[대우채 피해보상 의미]수익률 맞추기 편법에 제동

  • 입력 2001년 8월 19일 18시 32분


금융감독원이 19일 H투자신탁의 ‘규정위반’을 이유로 투자자 손해를 배상하라고 결정한 것은 ‘30년 위규 관행’을 스스로 뒤엎는 결정이다. 금감원의 이 같은 결정으로 앞으로 “나도 불법 펀드운용의 피해자가 아닌가”하는 문의가 투신사나 금감원에 밀려오는 등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정부가 대주주인 H투신이 배상결정에 대해 즉각 “정부의 시장개입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며 금감원 결정에 불복하고 나서 ‘정부끼리’ 다투는 상황마저 빚어지고 있다.


▽수익증권 무엇이 잘못인가〓과거 30년간 투신사들은 펀드 사이의 ‘물타기’를 사실상 감독당국의 묵인아래 공공연하게 해왔다. 물타기란 투자수익률이 높은 펀드에서 우량채권을 꺼내, 투자에 실패한 펀드의 불량채권과 맞바꿔 펀드별 수익률을 고만고만하게 만드는 수법. 일정이상 수익률을 약속하면서 투자금을 끌어모았기 때문에 수익률을 맞춰주기 위한 편법이었다.

이번 사건의 경우 H투신이 ‘10%룰’을 어겨가며 물타기를 하는 바람에 문제가 불거졌다. 10%룰이란 투신사가 운영하는 펀드에 1개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10%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규정. 그러나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증시 보호’를 앞세워 불법 펀드운용을 적발해도 가벼운 징계만 내리는 등 사실상 묵인해왔다.

사실 10%룰과 관계없이 펀드간 물타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타기란 운용사가 펀드수익률을 함부로 조작, 고객의 재산에 손대는 일로 올바른 간접투자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할 관행.

▼99년 8월당시 대우채권 규모▼

투신권의 채권형 펀드 총액257조원
대우채권이 포함된 펀드 규모110조원
대우채권 유통규모 35조원

이번 금감원의 분쟁조사 결과 H투신은 2000억원짜리 펀드에 ‘사실상 거래가 불가능한’ ㈜대우 채권을 25%인 500억원어치나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H투신은 “금감원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당시 경제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면서 법원에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관치금융’ 논란은 물론 감독당국의 책임 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투자자는 어떻게 해야하나〓금감원 고위관계자는 19일 “당장 내일부터 투자자의 전화문의가 폭주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99년 이후 대형 투신사를 중심으로 검사를 벌여 펀드별 불법내용을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은 해당 금융기관으로부터 불법 여부가 확인되면 19일 배상판정을 받은 박모씨 경우와 같이 배상결정을 내릴 방침이다. 그러나 수천개의 펀드마다 투자자 별로 투자기간이 각기 다르고, ‘10%룰’을 어긴 것이 고의성 여부도 제각각이어서 실제 확인까지는 최소한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은 먼저 수익증권이나 신탁상품을 산 증권사, 은행 등에 ‘내 돈이 투자된 투신사 펀드에 불법이 있는지’ 여부를 물어야 한다. 금융기관이 1차적으로 고객의 민원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불법사실이 확인된다면 금감원에 불법성을 확인받아야 한다.

금감원은 ‘10%룰을 어겼다고 해서 모두 손해배상 대상은 아니다’는 시각이다. 특정기업 채권비율을 10%이하로 유지하다가 고객의 환매요구 때문에 펀드에 편입돼 있는 다른 채권을 파는 바람에 불가피하게 특정기업 채권 비중이 높아진 경우는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 금감원은 “지금까지 이 같은 경우가 3건 모두 기각됐다”고 밝혔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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