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불황 無風"…사상최대 호황 '造船의 메카' 거제도

  • 입력 2001년 6월 24일 18시 30분


24일 오전 2시 거제 옥포 대우조선소. 한때 노사분규의 상징물이었던 높이 120m의 거대한 골리앗크레인 옆에는 어둠속에서 용접불꽃이 튀어오르고 있었다.

“발주 받아놓은 선박들의 납기날짜를 맞추려고 야근 특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습니다. 조립현장은 교대근무로 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 동안 가동되고 있습니다.”

팀장급인 이정용 선박조립1부 기원(技員)의 목소리엔 활기가 넘쳤다.

옥포의 대우조선소와는 자동차로 15분쯤 거리에 떨어져 있는 신현읍 장평리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 제3도크. 길이 332m 높이 31m로 잠실 축구경기장보다 넓은 초대형 유조선을 마무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배 만드는 작업은 레고장난감을 조립하듯 각각의 공정에서 철판조각을 붙여만든 ‘블록’을 도크에서 조립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야드에는 조립을 기다리는 블록들을 쌓아둘 공간이 없어 족구장까지 야적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삼성중공업 손병복 상무는 “지난해 36억달러어치를 수주했는데 올해는 수주목표를 28억달러로 낮췄다”며 “주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격이나 납기, 부가가치 등 ‘조건을 따져’ 수익성 높은 선박위주로 선별수주하자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행복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올해 한국의 조선업은 3년째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대부분의 조선소들이 앞으로 3년치 작업물량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태다. 지난해 초대형유조선(VLCC), 액화천연가스(LNG)선, 컨테이너선 등 전 세계로부터 밀려든 주문량은 현대중공업 547만GT(총톤수), 삼성중공업 459만GT, 대우조선 408만GT. 이들 3사의 국내 순위 1, 2, 3위는 그대로 세계 순위다.

삼성중공업의 기술담당 임원인 김철년 상무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경쟁력은 저임금 때문이 아니라 설비와 기술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서 “앞으로 10년간은 한국독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은 설비나 기술면에서 이미 따돌려 격차가 벌어지고 시작했고, 중국은 새로 투자해 한국을 따라오려면 그 정도 시간은 지나야한다는 설명이다.

세계 2, 3위 조선업체가 들어서 있는 덕분에 인구 17만명의 섬 거제도는 세계 조선산업의 메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삼성중공업, 대우조선과 협력사 직원 2만5000여명에게 봉급으로 풀리는 돈만 1년에 1조2000억원 정도. 한달에 1000억원인 셈이다.

덕분에 거제도는 ‘불황 무풍지대’다. 대우조선의 협력업체 원우엔지니어링 박상백 대표는 “직원 10명을 새로 뽑아야 하는데 거제도에서는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대우 직원인 이동철씨는 “월말에는 초저녁에 가도 단란주점 방잡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공단에 입주하지 못한 납품업체들이 늘면서 계룡산 산자락 여기저기가 공장부지로 파헤쳐지는 것도 급속성장에 따른 그늘이다. 김재익 거제시 건설도시국장은 “공단밖의 협력업체들로 난개발이 일어나고 있다”며 “중앙정부에 새 공단을 조성하기 위한 예산지원을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다”고 말했다.

거제 조선소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외국과의 경쟁이 아니라 내부의 노사불안. 23일 가랑비 속에도 옥포조선소 현장 여기저기에는 ‘총력투쟁’을 호소하는 노조의 격문이 붙어있고 투쟁속보지가 날리고 있었다. 7차까지 간 임금협상은 아직도 지지부진이다.

대우조선 이상 상무는 “며칠전에도 노조집행부가 민노총과 함께 현장 집회를 가졌다”며 “다행히 10년 가까이 큰 분규없이 지내왔지만 항상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제〓김광현기자>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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