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 상장-한보 매각-대생 주인찾기' 소모전에 경제 골병

  • 입력 2001년 1월 30일 18시 45분


‘삼성생명 상장과 한보철강 대한생명의 주인 찾아주기.’

해당 기업이나 이 기업에 빌려준 돈을 돌려 받아야 할 채권단으로서는 과거의 부실을 털어 내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재계의 3대 현안이다.

하지만 가부(可否)간 결정을 분명하게 내려줘야 할 정부가 뚜렷한 이유없이 질질 끌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다. 매각대상 기업은 속으로 골병이 들고 부채 관계가 남아있는 채권단과 기업은 소모전을 벌인다.

전경련 김석중 상무는 “결정권을 쥔 정부의 책임자들이 이해 당사자의 반발과 특혜 시비를 염려해 골치아픈 문제는 일단 뭉개고 보자는 식으로 처리하는 탓”이라며 “욕먹을 각오를 하고 총대를 메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삼성과 채권단의 소모전〓요즘 삼성 계열사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 현안은 삼성자동차가 진 빚 2조4500억원의 처리 문제.

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채권단 실무자들이 거의 매일 만나 해결책을 찾고 있지만 번번이 견해차만 확인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삼성생명 상장이 늦춰지면서 이건희(李健熙) 회장이 삼성차 부채의 담보로 제공한 삼성생명 주식 350만주를 현금으로 바꿀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삼성생명 주식의 상장은 정부가 늦어도 지난해 말까지 어떤 쪽으로든 결론을 내겠다고 약속한 사안. 주주와 계약자 몫의 분배비율 등 예민한 사항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자 슬그머니 결정을 미뤘다.

삼성과 채권단 모두 주무부처인 금융감독위원회를 쳐다보지만 언제 후속조치가 나올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삼성과 채권단측은 “우리는 다툴 생각이 없는데 정부가 말을 바꾸는 바람에 쓸데없는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며 볼멘 표정이다.

은행측은 “재무건전성을 높이는 데 차질이 생겼다”고 불만이고 삼성측은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전략을 짜는 데 쏟아야할 힘을 엉뚱한 데 허비하고 있다”며 금감위를 원망한다.

▽속으로 골병드는 한보와 대생〓충남 당진 개펄에 들어선 한보철강 당진제철소는 97년 1월 부도가 난 뒤 4년째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돼 있다. 부도 당시 3000명이던 직원 수는 580명으로 줄었다.

한보철강 채권단은 30일 컨설팅 결과를 토대로 당진제철소 중 열연 철근공장의 A지구와 코렉스 설비 및 제강 열연 냉연설비가 있는 B지구를 분리해 매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95년 착공된 B지구는 3조3000억원이 투입됐지만 막대한 추가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된 데다 그나마 있는 시설도 가동을 멈춘 상태이다.

발표대로라면 정상가동 중인 A지구는 새 주인을 만나 일부 대금을 회수하게 되지만 앞으로 완공까지 1조8000억원이 더 필요한 B지구는 고철 신세가 된다. 지금까지 들어간 공사대금에다 매립비용 등을 합하면 4조5000억원 이상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셈이다.

대한생명은 99년 11월 공적자금 2조500억원이 투입되면서 민영도 국영도 아닌 ‘반관반민(半官半民)’의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한화를 비롯한 국내외 몇몇 기업이 관심을 보이지만 매각방식을 놓고 금감위와 재정경제부의 이견까지 겹쳐 매각이 언제 이뤄질지 오리무중인 상태이다. 일선 영업망이 워낙 탄탄해 버티고 있지만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외국계 보험사의 공략으로부터 기존 시장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원재·김동원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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