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딜은 계속돼야 한다

  • 입력 2000년 12월 4일 18시 29분


“어렵게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성사시켰지만 우리 산업계의 고민인 공급과잉과 출혈경쟁은 여전하다. 빅딜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이병욱 전경련 기업경영팀장)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산업경쟁력 회복을 위해 빅딜 논의가 시작된 지 3년째. 우여곡절 끝에 작년말 7개 업종의 빅딜이 마무리됐지만 업종별 기업별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유화업계는 한화석유화학과 대림간의 빅딜에도 불구하고 공급과잉에 시달리다 자율감산에 들어갔다. 철강 화섬업계는 경기침체에 따른 재고부담을 못견뎌 또 한번의 빅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현대 대우 한진 등 3개 업체의 철도차량 부문을 통합한 한국철도차량은 경영 악화에 노사분규까지 겹쳐 1일 직장을 폐쇄했다.

▽수치상으로는 목표 달성〓98년 9월 전경련과 5대 재벌이 ‘빅딜 돌입’을 공식 선언했을 때 정유 반도체 철도차량 항공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석유화학 등 7개 업종이 대상에 올랐다. 정부의 은근한 압력과 업계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외형상으로는 모든 업종에서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현대는 한화에너지(정유)와 LG반도체를 각각 인수했다. 삼성 현대 대우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발전설비와 선박용 엔진은 한국중공업 중심으로 재편돼 경영주체가 명확해졌다. 항공은 현대―대우―삼성, 철도차량은 현대―대우―한진 등 3자가 통합법인을 설립키로 합의했다.

석유화학 업종은 전남 여천단지의 한화석유화학과 대림산업이 에틸렌 부문을 떼어내 50대50의 합작법인인 YNCC를 만들었다. 다만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은 빅딜이 사실상 무산돼 공급과잉의 부담을 그대로 짊어지게 됐다.

▽정부―재계 엇갈리는 평가〓빅딜에 대한 산업자원부의 평가는 ‘A’학점. 우리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업종별 과잉 중복투자를 해소하고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전문화의 기반을 닦게 됐다고 자평한다. 이들 7개 업종은 구조조정을 통해 총 자산의 15.1%에 해당하는 3조2000억원의 자산을 줄여 과잉설비를 없앴고 부채비율도 평균 594%에서 193%로 낮췄다는 것. 과잉인력도 2610명을 내보냈다는 것.

재계의 평가는 다르다. 경영부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데다 시한에 쫓겨 통합을 서두른 탓에 구성원간의 이질감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항공과 철도차량 등의 경우 회사를 합치긴 했지만 주인이 분명하지 않아 경영난맥을 드러냈다.

항공 통합법인은 증자 외자유치 등 자금난 해소가 절박하고 철도차량은 한 회사에 노조가 3개나 돼 경영진을 난감케 했다.

▽“그래도 빅딜은 필요하다”〓상당수 업종이 경기하락과 이에 따른 수요감소를 감안할 때 ‘2차 빅딜’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 손병두부회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전경련 산하 산업위원회에서 어떤 업종에 빅딜이 필요할지 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추진 방안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차빅딜이 정부 주도 아래 재계가 마지못해 이끌려간 ‘반관 반민’의 빅딜이라면 이제부터 전개될 빅딜은 ‘100% 민간형’이 될 것이라는 설명.재계는 “정책 일관성 차원에서 98년 정부가 약속했던 빅딜에 대한 금융 세제상의 지원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