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자산업 정책브레인들의 '쓴소리'

  • 입력 2000년 12월 3일 18시 57분


“요즘 정책에는 진지함이 묻어있질 않아요.” “위기를 풀어나가는 데 왜 정부 따로 기업 따로입니까.”

80년대 전자산업을 이끌었던 ‘정책브레인’들이 쏟아낸 쓴 소리다. 81년 정부 주도의 ‘전자산업육성계획 작업반’에 참가했던 인사 9명은 지난 주말(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식당에서 조촐한 모임을 가졌다. 요즘의 경제위기상황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져 만들어진 자리.

한 참석자는 “80년대 초 황무지 상태에서 오늘날의 전자산업을 일구어냈다”면서 “탄탄한 펀더멘털을 갖춘 우리나라가 요즘 왜 이렇게 흔들리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81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을 맡았던 홍성원(洪性源)시스코시스템스코리아 회장은 “당시 짧은 기간에도 주력 분야를 메모리로 할 것인가, 중앙처리장치로 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며 보다 진지한 정책 논의를 주문했다. 당시 재무부 관세조정과장이었던 변형(邊炯)전 한국투신 사장은 “어느 분야든 정책 의지만 있으면 집중 육성이 가능하다”면서 “세계무역기구(WTO)체제라 해도 정부가 적극 나서 산업지원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정부의 ‘정책밀도’가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특히 “정부가 민간과 손잡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추진하는 일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며 “이대로 가다간 2005년경 전자산업이 고비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자리에는 작업 반장이던 이동훈(李東勳)한국전화번호부 사장을 비롯해 윤정우(尹楨宇)전자정보기술인클럽 부회장, 최성규(崔星奎)자동차부품연구원 연구위원, 오명(吳明)동아일보 사장, 홍성원 시스코시스템스코리아 회장, 정홍식(鄭弘植)텔슨전자 회장, 송옥환(宋鈺煥)차세대이동통신기술개발협의회 사업관리단장, 이정보(李廷甫)전 보험감독원장, 변형 민주당 국정자문위 광주시지부장 등 9명이 참석했다

이 작업반은 이날 불참한 엄낙용(嚴洛鎔)산업은행총재와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 등을 포함해 20여명으로 3개월 만에 전자산업 집중 지원 정책을 마련해 86년 수출 100억달러를 돌파, 기계산업을 앞질렀고 88년에는 200억달러 생산으로 섬유산업을 추월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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