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의 '진짜 위기' - 디조벤처 김국환 사장

  • 입력 2000년 10월 29일 18시 24분


다들 ‘진짜 벤처의 겨울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벤처업계에서 밥벌이를 하는 벤처컨설팅업체 벤처이즈의 김국환(金國煥·36·사진) 사장이 보는 벤처겨울은 다르다.

“사채시장과 연결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가 제풀에 무너진 ‘정현준게이트’는 사실은 벤처 지류의 무용담에 불과하다. 사실 자기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은 많지 않다. 우리 벤처업계는 이제 막 아동기를 벗어나고 청년기로 나아가고 있는 단계에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면 ‘벤처 본류’의 겨울 풍경은 어떠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벤처업계의 문제는 결국 펀딩(자금 마련)이 안 돼서 생긴다. 대략 5월부터 문제가 생겼다. 시장은 성숙하지 않았는데 중복투자로 매출이 줄어들면서 자금난이 시작됐다.…”

그에 따르면 벤처기업들의 겨울 채비는 △인수 및 합병(M&A) △해외 진출 △차입의존형 등으로 나뉜다.

인수 및 합병은 자금력과 기술력의 결합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과잉중복투자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적당한 상대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다. ‘천생배필’을 찾아도 실제 성사되는데 걸림돌이 많다.

해외진출형은 로커스처럼 현지 판매법인이나 합작법인 등을 차려 활로를 열어가는 것. 일본 싱가포르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는 노력도 하고 있다. 김사장은 “일본과 싱가포르 자본이 저금리 자금으로 투자펀드를 만들어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둘은 그나마 기술력을 인정받았거나 자금줄을 잡은 경우. 문제는 차입의존형이다.

―차입금으로 연명하는 벤처기업들이 많다는데….

“코스닥등록 업체들은 연 15∼24%, 장외기업들의 경우 월 3%의 고금리도 없어 못쓴다. 이자를 못 낼 경우 돌려도 좋다는 각서와 함께 백지어음을 써주는 것이 기본이다. 친척 등 주변에 손을 벌리거나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끊어 연 7% 안팎의 정책자금을 끌어쓰는 축은 그나마 낫다. 국내 벤처는 어음을 잘 안 쓰니까 부도율로는 벤처업계의 처지를 알 수 없다. 어려워지면 임금체불, 임대료 체불, 인원삭감 등으로 끝까지 버텨나간다.”

―창투사를 통한 펀딩은 중단됐다는 말인가.

“이미 인수합병된 창투사들도 있고 10개 안팎이 매물로 나와있다. 조합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대부분 창투사들이 놀고 있다. 조합을 만들 수 없는 지경이니 운영수수료, 이익수수료, 배당 등 수입이 나올 턱이 없다. 100여개의 신생 창투사 대부분이 애초 운영자금으로 떼놓은 30억∼40억원으로 그저 무위도식하는 식이다. 보유 지분을 지금 장외에서 처분을 하면 평가손이 생기거나 거래 자체가 형성이 안 되는 ‘마분지’가 돼가고 있다.”

―정부나 업계가 할 일은 뭔가.

“패닉(공황)상태로 몰아가지 말고 차분히 대처해야 한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업체들은 모두 망할 기업이라고 보는 도매금 시각도 곤란하다. 직접출자 세제혜택 제도개선 등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해외진출을 적극 도와주고 ‘대주주가 바뀌면 난리난다’는 전제로 만들어진 M&A 관련 규제도 확실히 풀어줘야 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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