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경기 위축, "7월부터 손님 뚝...장사 안돼요"

  • 입력 2000년 10월 8일 19시 09분


“7월부터 손님이 줄었을 때는 계절 탓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추석이 지나도 수입이 늘지 않는 겁니다. 매출이 연초의 절반 이하로 뚝 떨어져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터미널 부근에서 대형 사우나를 운영중인 박성수씨는 “낮시간에 계모임을 겸해 찾는 주부 고객이 절반 정도로 줄었고 심야시간대의 직장인 고객도 40% 가량 감소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종로영업소 사원인 한경수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 국제유가가 급등한 지난달부터 자동차 계약실적이 줄어들더니 10월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종로영업소는 올들어 8월까지 한달 평균 120대를 팔았지만 9월에는 90대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다.

고유가와 금융시장 불안, 이에 따른 주가하락으로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면서 실물경기가 급격히 내림세로 돌아서고 있다. 취재팀이 밑바닥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10대 체감지표’를 조사한 결과 실물경기는 7, 8월을 고비로 둔화되기 시작해 9월부터 소비와 생산이 동반 위축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취재팀이 조사한 대상은 △승용차 판매 △휘발유 판매 △백화점 의류매출 △패밀리레스토랑 매출 △사우나 매출 △남대문시장의 상경 버스대수 △택시운전사 수입 △고속도로 통행량 △베어링 판매 △시멘트 출하 등 10가지.

▽급속도로 냉각된 소비〓30, 40대용 국산 브랜드 여성정장과 신사복 매출이 올 상반기를 고비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줄어들기 시작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경우 여성정장 매출은 6월까지 10∼20%씩 늘다가 7월에 갑자기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서 9월에는 ―13.5%를 나타냈다. 지방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서울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을 찾는 지방상인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남대문시장 김찬겸 시장기획주임은 “9월 한달동안 지방상인들이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타고 온 버스의 대수는 작년과 별 차이가 없지만 버스를 채우는 상인들의 숫자는 올해초보다 10∼30%가량 줄었다”고 설명했다.

유가상승으로 인해 자동차와 휘발유 판매도 크게 줄었다. 서민과 젊은층이 주수요층인 현대 베르나는 8월엔 5553대가 팔렸지만 9월에는 판매량이 4551대로 뚝 떨어졌다. LG칼텍스정유의 작년 9월 판매량은 557만2000배럴이었지만 올 9월에는 486만8000배럴로 12.6% 감소했다.

▽생산도 둔화 조짐〓제조업 경기의 선행지표로 꼽히는 베어링의 9월중 내수 판매량이 격감했고 고속도로를 통행하는 차량 수가 크게 줄었다.

메이저 업체인 FAG한화베어링의 9월중 판매량은 1291만9000개로 올들어 최저치. 회사 관계자는 “베어링은 거의 모든 산업현장에서 쓰는 기초부품인데 추석 연휴가 끼어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판매량이 너무 많이 줄어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중”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경부고속도로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한 차량(상하행 합계)은 573만8466대로 최근 6개월중 가장 적었다. 특히 화물차량 10∼20t 통행량은 6만6172대로 전월보다 3500여대나 줄어 감소폭이 가장 컸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일반 가정의 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소비심리가 둔화되고 이는 내수부진으로 이어져 생산활동까지 위축시킨 것으로 보인다”며 “본격적인 경기하강을 점치기는 이르지만 구조조정이 실패할 경우 경기가 급격히 냉각될 여지는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박원재박중현하임숙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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