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판 외국인은 누구일까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57분


‘삼성전자를 판 외국인은 누군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증시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삼성전자의 주가 향배를 점치려면 55% 남짓의 지분을 가진 외국인의 의도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8월 28일 삼성전자 순매도를 시작한 외국인은 30일까지 8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네 번째 날인 31일엔 무려 3555억원어치를 팔고 609억원어치를 사들였다. 2946억원어치에 이르는 사상 최대의 순매도였다. 9월1일엔 순매도 강도가 떨어져 419억원어치에 그쳤다.

투매 배경에 대한 가장 무난한 설명은 특정 펀드의 삼성전자 편입비중 축소 또는 청산을 앞둔 물량 정리설. 펀드의 정체는 유럽계라는 의견이 많다.주요 매도창구가 자딘플레밍, 크레디리요네 등 유럽계였다는 점이 그 근거. 미국계 펀드라는 설도 나온다. 삼성전자 주식을 그 정도로 많이 갖고 있는 곳은 지분이 10% 이상으로 ‘실질적인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간주되는 미국의 한 글로벌펀드밖에 없다는 주장.

으레 그렇듯이 ‘선물 연계 작전’설도 제기됐다. 외국 작전꾼들이 선물시장에서 매도포지션을 걸어놓고 지수 영향력이 큰 삼성전자를 대량매도, 현물 주가지수를 떨어뜨려 선물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시나리오다. 최근 선물시장에서 외국인 매도가 많았고 선물시장의 외국인들이 투기적인 매매패턴을 자주 보였다는 정황이 이런 추정을 그럴듯하게 한다. 하지만 현물에서 3500억원어치 희생타를 날려 선물에서 그 이상의 이득을 얻겠다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나 큰 도박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 그 돈을 굳이 현물에 투자하지 않고 선물 옵션에 쏟아부었다면 충분히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론도 일리 있다.

삼성차 부채처리와 연관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측의 우회적인 현금확보 전략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삼성생명 상장을 사실상의 전제로 보유주식을 채권단에 위탁한 이 회장측이 연내상장이 어려워지자 채권단의 ‘8월말까지 채권 보전 의지를 보이라’는 요구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처분한 게 아니냐는 것. 하지만 국내외 증권사 관계자들의 얘기에서 드러나는 최소한의 공통점은 ‘단수의 외국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많은 증시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은 삼성전자와 국내증시 전반의 수급여건, 반도체경기 정점 논란, 삼성전자의 반도체 이외 부문의 실적 부진 등을 감안할 때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중장기 외국 펀드들은 아직 동요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이나 일본의 동종업종 주식보다 저평가됐으며 기업실적도 미처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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