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中企업종 진입경쟁… "디지털 경제엔 문어발 없다"

  • 입력 2000년 8월 1일 18시 46분


‘벼룩의 간’을 빼먹는 행동인가. 아니면 거부할 수 없는 디지털경제의 흐름인가.

최근 대기업들이 온라인을 통해 전통적으로 중소기업 업종이라고 여겨져왔던 영역에 진출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업종의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의 이런 행태를 ‘문어발식 사업확장’이라고 비난하면서 강력히 반발한다. 반면 일부 업종에서는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최근 정유회사인 SK㈜는 Encar.com을 설립, 온라인 중고자동차 매매사업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중고차를 팔려는 사람이 전국의 SK주유소 점검센터에 차를 세워두면 온라인에서 정보를 입수한 수요자가 주유소에 들러 차를 살펴본 뒤 구매여부를 결정하는 영업형태. SK는 이 과정에서 차량정비 및 차량의 신뢰성을 보증해주는 대가로 일정 수수료를 받을 계획이다. 현대정유와 LG정유도 중고차 매매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LG정유는 중고차할부금융의 선두인 LG캐피털과도 합작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존 중고자동차 매매업자들은 “재벌들이 아직도 문어발식 확장경영을 하고 있다”며 강력하게 반발한다. 서울 자동차매매사업조합의 최동진 상무는 “핵심업종에 집중하고 선단식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과거의 약속은 어디 갔느냐”고 비난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의 반응은 약간 다르다.

디지털경제시대에 들어서면서 업종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업종의 융합 및 복합화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재벌의 문어발 확장으로만 보는 시각은 무리라는 것.

LG경제연구원의 박팔현 연구위원은 “기존 중고차 시장이 너무 폐쇄적이고 거래의 투명성이 높지 않았다”며 “기존 중고차업자들이 디지털경제에 적응이 늦은 상태에서 대기업은 물론 어느 누구든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온라인 거래 활성화는 경제의 효율을 높이고 소비자에게도 이익이라는 것.

대기업의 중소기업 영역 진출은 중고자동차시장뿐만이 아니다.

각종 인터넷 사업에 진출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최근 온라인 서점업과 여행업에도 진출했다. 몇 년 전에 삼성물산이 책을 팔거나 여행사를 한다고 나섰다면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라며 집중포화를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삼성물산을 비난하는 중소업자는 별로 없다.

각 건설회사도 온라인 부동산거래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중이다. 또 SK글로벌 등 각 대기업들은 필기구나 종이 등 기업의 소모성 자재(MRO)를 거래하는 B2B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과거 시각으로 보면 이 역시 대기업이 문구업에 뛰어든 것과 같은 행태.

중소기업청 역시 과거의 시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업종을 ‘칼로 두부 썰듯이’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 중기청은 이런 흐름을 반영, 최근 중소기업 고유업종 43개를 폐지했고 또다른 45개 업종도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중기청 관계자는 “업종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국내시장 개방이 갈수록 확대되면서 중소기업 보호 원칙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있다”며 “시장경제의 원칙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병기·홍석민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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