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규 삼성전자 대표 "세계 앞에 우뚝 선 Mr. 반도체"

  • 입력 2000년 7월 19일 18시 58분


지난달 15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힐튼호텔. 반도체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학회 가운데 하나인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 회의가 열리는 첫날이었다.

매년 6월 열리는 VLSI 회의는 2월 ISCC(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 Conference), 10월 IEDM(International Electron Device Meeting)과 함께 반도체 분야의 3대 메이저 학회로 꼽힌다.

회의장을 가득 메운 전세계 반도체 업계와 학계 인사들은 숨을 죽인 채 자그마한 체구의 한 동양인의 기조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강단에서 연설을 한 주인공은 삼성전자의 황창규(黃昌圭)대표. 주제는 ‘21세기 메모리 반도체는 어디로 가는가’였다.

미국의 인텔, 일본의 NEC와 도시바 등 전세계 반도체업계와 학계의 거물들이 모인 학회에 한국인이 회의 일정을 시작하는 기조연설자로 초청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1시간에 걸친 연설을 마치고 청중들의 박수 소리에 묻혀 강단을 내려오는 황대표에게 문득 지난 10여년간의 기억들이 스쳐갔다. 80년대 후반까지도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권위있는 반도체 관련 학회에 명함을 내미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들 학회에 참가하려면 기초 기술력은 기본이고 남들과 다른 특허 기술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세계 반도체 산업을 주름잡고 있던 미국과 일본의 텃세는 상당했다. 황대표가 이번 학회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됐다는 사실은 ‘반도체 한국’의 위상이 10년간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 사례였다.

삼성전자가 D램을 처음 발표한 것은 83년. 10개월에 걸쳐 7억3000만원의 개발비를 투입해 64KD램을 선보였지만 당시 메모리 반도체의 맹주로 자처하던 일본에 비해서는 무려 4년이나 뒤쳐져 있었다. 84년 256KD램, 86년과 88년 1메가와 4메가D램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일본과의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89년 16메가D램을 일본과 같은 시기에 발표하면서 ‘역전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남보다 한발 앞선 투자와 연구로 90년대는 가히 삼성의 독무대였다. 메모리 반도체에 관한 한 일본이 한국을 따라잡는 것은 이제 힘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번 VLSI 회의에서 삼성전자는 0.11㎛(1㎛〓100만분의1m)급 회로선폭으로 1기가D램을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발표, 일본 업계 관계자들의 어깨를 쳐지게 했다.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일본 업계의 추격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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