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주영씨 방북…서해공단-금강산 개발권 고대

  • 입력 2000년 6월 27일 18시 55분


정주영(鄭周永)전 현대명예회장과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일행이 28일 북한을 방문한다. 정전명예회장 등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요청한 남한 막걸리 52박스및 건설 자재와 트럭 등을 가져간다. 당초 계획했던 ‘소떼 방북’은 검역문제로 취소됐다.

두차례의 금강산 유람선을 통한 방북을 제외하고도 이미 7차례나 북한을 드나든 ‘왕회장’이지만 이번 방북은 의미가 깊다.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남에 따라 10년간 현대가 키워온 대북사업의 과실을 걷어들일 때가 됐다고 현대측은 보고 있다. 89년 ‘왕회장’의 첫 방북 후 현대는 금강산 관광 등을 통해 대북사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현대가 수익성을 무시한 채 대북사업에 돈을 퍼붓고 있다”고 비난받을 정도로 대북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왕회장의 관심사는 대북사업이 가장 우선 순위”라는 주변 인사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 전명예회장은 승부사로서의 마지막 작품을 대북 관련 프로젝트로 마무리짓고 싶어한다.

85세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왕회장’이 직접 나선 것도 김국방위원장으로부터 중요한 ‘선물’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가 이번에 가장 기대하는 것은 금강산 관광 확대와 서해안 공단 개발.

현대아산측은 외국인의 금강산 관광을 대폭 확대하고 장전항 일대에 1만여평에 이르는 종합편의시설과 호텔 3개소 및 해상관광호텔과 통천지역에 스키장 골프장 등 위락시설을 건설할 계획. 북한측이 이를 받아들이면 대규모 외국자본도 쉽게 끌어들일 수 있고 수익성도 높일 수 있다.

더 야심찬 프로젝트는 서해안 공단 개발.

현대증권 이익치(李益治)회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사업은 해주나 남포에 총 2000만평 규모의 공단을 조성하고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거 입주해서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해 총 200억달러의 수출을 달성한다는 계획.

북한측은 해주나 남포가 평양과 너무 가깝고 북한 근로자만 22만명이 동원돼야 하므로 정치적인 위험요소가 너무 크다고 보고 신의주 지역 공단 조성을 은근히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측은 신의주 지역 실사작업을 통해 신의주 공단은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짓고 김국방위원장의 결단을 촉구해 왔으며 이번 방북때 해주나 남포 공단 조성을 확정해 주길 바라고 있다.현대 관계자들은 겉으로는 낙관적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초조감도 엿보인다.10년간 투자한 대북사업에서 아직 뚜렷한 실적이 없는데 남북경협이 ‘현대’와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라는 구도에서 양국 정부간 문제로 승격되면서 현대의 헤게모니가 정부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 다른 그룹들의 추격전도 만만치 않다. 재계는 벌써 ‘남북경협창구 단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룹회장직을 사임한 정몽헌회장은 대북사업에서 굵직한 성과를 올려 경영인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아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왕회장’이 2박3일간의 방북을 마치고 30일 귀국할 때 어떤 ‘보따리’를 풀어놓을지 주목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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