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여파 아직도 멍든 금융시장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02분


“대우그룹 워크아웃의 파장이 아직도 경제 곳곳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정부 고위 경제 관료가 최근 사석에서 털어놓은 현실 진단이다. 자산 순위 국내 2위 그룹의 몰락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깊은 주름을 우리 경제에 남기고 있다. 대우채에 짓눌려 도태되는 금융기관이 잇따르고 있고 대우채의 상환 책임을 둘러싼 분쟁으로 금융시장이 뒤숭숭하다.

▽분쟁 국면에 돌입한 대우 ‘연계콜’〓대우는 워크아웃에 돌입하기 직전 제2금융권에서 9조원 가량의 급전을 꿔 썼다. 당시 제2금융권은 동일 계열 투자 제한 규정이나 고위험을 피하기 위해 중개 금융기관을 통해 대우에 수천억원씩을 빌려줬는데 이 중개기관이 인가 취소나 영업 정지를 당하면서 변제 책임이 애매해졌다. 중개기관이 발행한 어음이 예금자보호대상이냐 여부가 분쟁의 초점.

급기야 재정경제부는 9일 “금융기관과 예금보험공사간에 대지급 분쟁을 빚고 있는 대우 연계콜은 1조원 규모에 불과하며 빠르면 다음 주초 처리 원칙을 발표할 것”이라며 진화를 시도했다. 양자간 책임 분담 비율을 정하겠다는 것.

대우 연계콜 자금을 댄 금융기관은 대한투신 서울투신 한국종금 삼신생명 등이고 자금을 중개한 금융기관은 대우증권과 영남종금 나라종금 등.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진 한국종금의 경우 대우 사태 이전에 나라종금이 발행한 어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1880억원을 지원했고 나라종금은 이 돈을 대우에 콜로 빌려줬다가 인가를 취소당했다.

정부는 나라종금 한국종금 하나은행의 예에서 보듯 연계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힘들다는 판단. 그러나 재경부의 중재 결정에 해당 금융기관이 승복하지 않을 경우 지루한 법률 분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조 개혁 2년은 늦춰졌다’〓지난해 8월 대우 워크아웃 개시 당시 채권금융기관이 신고한 대우 여신은 모두 57조원. 올 3월까지 이중 31조원이 은행 투신 보증기관 제2금융권의 손실로 반영됐다. 이에 따라 99년 결산기에 8조원을 대우채 관련 손실로 털어야 했던 일반은행들은 영업 호조에도 불구하고 5조원 가까운 적자를 냈고, 사상 최대의 흑자가 예상됐던 증권업계도 3월 결산에서 1조4000억원 정도의 흑자를 내는데 그쳤다.

은행 증권은 그래도 양호하다. 고리의 대우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사들였던 투신권은 4조7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이에 따라 한투 대투 등 양대 투신을 비롯, 상당수 투신사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고 이는 주식 채권시장의 매수세를 약화시켰다. 7월 시가 평가제 등을 앞둔 정부는 ‘타 금융기관과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투신권 살리기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정부는 당초 2∼3년내 금융기관 잠재 부실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감독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대우 몰락으로 이같은 일정은 2∼3년 미뤄졌으며 결과적으로 추가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박원재·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연계콜 왜 문제인가?▼

‘연계콜’이란 A금융기관이 제3자인 B금융기관을 통해 C기업에 대출해주는 것. 일명 ‘브리지론’으로도 불린다.

그렇다면 왜 연계콜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금융계에선 단기자금 운용을 위해 종금사에 편법적으로 만들어진 ‘발행어음계정’이 있는 한 연계콜은 구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고름’으로 여긴다.

종금사의 연계콜을 이용하는 이유는 우선 제3자를 통하지 않으면 대출해주기 곤란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A금융기관이 C기업에 대출하려는데 △이미 대출한도를 초과했다거나 △동일계열 부당지원 등의 혐의가 있는 케이스가 해당한다.

예금보험공사측은 이제까지 한국종금의 나라종금을 통한 대우연계콜은 ‘형식’만 발행어음이지 ‘내용’은 동일계열사인 대우를 편법지원하기 위한 ‘연계콜’로 의심해왔다. 따라서 종금사의 예금 중 예금보호대상이 되는 발행어음이 아니며 따라서 보상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은행과 종금사간 또는 종금사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 금융기관간 금리인 콜금리보다 발행어음계정의 금리가 더 높은데다 종금사의 ‘발행어음계정’의 예금은 예금보호대상으로 안전하기 때문.

예를 들어 A금융기관이 B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경우 B기업이 부도가 나면 대출액은 부실여신이지만 A가 C종금사의 ‘발행어음계정’에 ‘예금’하고 C가 다시 B기업에 대출한 경우엔 A의 ‘예금’은 예금보호 대상으로 보호받는다.

<이나연기자>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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