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동성 위기]정몽구회장 왜 말 바꾸나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지난달 31일 오후5시40분. 정주영 명예회장을 부축하며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을 나서던 정몽구회장은 퇴진 결정을 받아들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여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제스처를 보였다.

이날 오후9시경. 정몽구 회장은 ‘현대 기아자동차의 분명한 입장을 밝힙니다’라는 문건을 통해 “대주주이자 책임 전문경영인이자 대표이사로서 자동차 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밝혀 퇴진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불과 3시간여만에 태도가 바뀐 것. 이같은 태도 변화에 대해 아버지에게 절대 복종하는 정몽구회장의 평소 행동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속으로는 퇴진을 수긍할 수 없지만 감히 정명예회장 앞에서 ‘불복’ 의사를 밝힐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의 그림자도 안밟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정명예회장은 몽구 회장에게 퇴진하라고 한 게 아니라 단지 자동차를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하라는 의미였다며 결정에 불복한 건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고 있다.

몽구 회장의 부친에 대한 경외심은 여러 사례에서 드러났다. 96년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했을 때는 각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전면에 나설 수 없다”며 고사하기도 했다.

각종 행사에서 정명예회장과 같은 줄에 서지 않는 것도 유명하다. 회장 직함을 얻기 전까지는 계동 사옥에 드나들 때 늘 후문을 이용했다. 그에게 정문은 부친이 드나드는 출입구였기 때문.최근에는 정명예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자동차의 최대주주가 되자 “장자인 내가 아버지를 모시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주변을 다독거리기도 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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