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PI기법 도입 "붐"…"CEO 떠야 기업도 뜬다"

  • 입력 2000년 5월 24일 19시 37분


‘정치인과 연예인, 그리고 최고경영자.’

별다른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직업이지만 요즘 대기업 홍보담당자들 사이의 화두다.

최근 재벌그룹이나 대기업 홍보담당자들은 PI(President Identity)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스타 연예인의 매니저나 정치인 홍보담당자를 찾아다니며 한수 배우고 있다.

PI가 적극 추진되는 것은 주주자본주의 시대를 맞아 경영자의 이미지가 중요해졌기 때문. 이른바 ‘CEO주가’ 때문이다.

SK그룹은 최근 최대주주이며 차기 그룹회장인 최태원(崔泰源)SK㈜회장의 이미지 만들기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 ‘대주주이면서도 디지털경제에 해박한 전문경영인’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측근의 설명.

이를 위해 최회장은 고려대 서강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테크노 경영대학원에서 각종 강연활동을 갖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e비즈니스를 선도하는 경영자’ 이미지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최근 허태학(許泰鶴)사장의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고 각종 강연회나 기자회견을 활발히 갖도록 하고 있다. 에버랜드측은 허사장을 ‘서비스 전도사’라는 브랜드로 만들 계획.

전문가들은 가장 성공한 PI사례로 93년 ‘탱크주의’를 들고 나온 배순훈(裵洵勳)전사장을 꼽는다. ‘대우전자〓기술력이 떨어진다’는 일반인의 인식을 MIT대 박사출신의 배사장이 직접 광고에 나와 탱크주의를 설파, 일약 대우전자의 이미지를 개선시켰고 매출도 30% 이상 신장시켰다.

문민정부 초기 ‘경영혁신’을 내세웠던 삼성 이건희(李健熙)회장의 PI작업도 초기에는 성공했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방향선회를 한 사례. 이회장은 ‘마누라말고는 다 바꿔보자’며 혁신경영인으로서의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가 베이징(北京)에서의 ‘정치는 3류’라는 발언에 청와대측이 발끈하면서 PI작업을 변화시켰다.

실패 사례도 있다. 현대경영권 분쟁에서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이 계열사사장단을 소집, 정몽헌(鄭夢憲)회장을 그룹회장으로 선임한 장면이 꼽힌다. 경영권분쟁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회장이 직접 나서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지만 결국 황제경영의 극치를 보여준 최악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

대기업의 PI작업을 자문하고 있는 SRP 서재경사장은 “실제와 이미지가 일치하지 않는 말 그대로의 ‘이미지 메이킹’은 언젠가 실체가 드러나 오히려 역효과를 빚지만 장점을 부각시키는 PI는 기업이미지 제고에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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