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鄭회장일가 사재출연 논란…이건희회장 선례 주목

  • 입력 2000년 4월 28일 19시 34분


현대 오너일가도 삼성 이건희회장처럼 사재출연을 하게 될까.

현대투신 부실로 주식시장이 한바탕 요동친 후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몽헌(夢憲)회장 등 오너일가의 고통분담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현대는 이에 대해 투신 부실은 ‘대주주와 무관하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지만 논쟁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오너 고통분담론의 배경〓투신문제 해결은 원칙적으로 대주주인 현대전자와 증권이 책임질 문제다. 그러나 소수주주 권한이 확대돼 있고 외국인 지분비중이 커(현대전자의 경우 42%) 부실 투신사에 추가 출자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투신의 부실규모도 문제. 현대투신은 부실규모가 1조3000억원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시장은 대우채 손실분담 8000억원을 포함하면 1조5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추정한다. 1조원이 넘는 부실을 계열사의 분담만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지적. 이미 현대전자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동요를 의식, “투신에 돈을 넣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을 위한 명분축적용으로도 고통분담이 제기된다. 비록 경영간섭을 우려하는 재계의 반발을 의식,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은 자제하고 있지만 사재출연을 내심 바라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도 28일 “내 입에서 나온 얘기는 아니다”는 정도로만 반응을 보였다.

▽삼성의 선례〓삼성 이회장의 경우 자동차 부채처리가 외국인주주의 반대와 소수주주권이라는 난관에 걸리자 사재출연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이회장이 내놓은 2조8000억원 어치의 생명 비상장 주식은 완전히 채권상환에 쓰이기 때문에 이회장의 입장에서는 ‘버린’ 돈이다.

반면 현대투신에 대한 오너일가의 책임분담은 추가출자의 형태를 취할 수 있어 그 고통의 수위는 훨씬 낮아질 것이란 전망. 자본금 잠식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출자하는 만큼 후일 주가상승으로 시세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는 논리도 나온다. 실제로 SK증권은 IMF 직후 퇴출위기에 몰려 주가가 바닥권이었지만 대주주와 계열사들의 출자로 기사회생, 상당한 시세차익을 거두기도 했다. ▽전문가들 분석 엇갈려〓삼성 이회장의 사재출연에 이어 또다시 돌출한 오너일가의 고통분담에 재계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현대투신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오너 일가가 책임을 질 이유가 어디 있느냐는 것. 반면 시민단체들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경영을 좌지우지한 책임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정부는 불거지는 사재출연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금융감독위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지배구조가 불신을 확산시킨 만큼 결자해지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투신운용사 사장은 “투신의 공적자금 투입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것이 현실이라면, 총수의 사재출연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박래정·이철용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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