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증여? 돈세탁?…제3시장 '수상한 거래'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5분


29일부터 지정종목의 주식이 본격적으로 매매되고 있는 제3시장이 세금을 내지 않고 부(富)를 변칙증여하거나 ‘검은 돈’을 세탁할 수 있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감독당국이나 세무당국에서는 3시장이 정규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

▽세금 없는 변칙증여〓재산가인 A씨가 자녀 등 친인척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을 생각해보자.

A씨는 3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특정 기업의 사모나 인터넷공모에 참여해 주식을 취득한다. 3시장 종목으로 지정된 뒤 취득가 미만으로 매도주문을 낸다.

제3의 매수자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전화 등으로 연락하면서 동시에 같은 가격과 물량으로 매수주문을 내놓는다. 이 경우 친인척의 실명계좌나 다른 이의 차명계좌를 이용한다는 것. A씨는 매매차손이 발생했기 때문에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A씨의 친인척은 해당 기업이 코스닥시장으로 간 뒤에 보유 주식을 비싸게 팔 수 있다. 아니면 장외시장에서 매수자를 물색, 가격을 협상해 처분한다. 코스닥시장에서는 양도세가 없고 장외시장의 경우 매매사실을 손쉽게 감출 수 있다.

▽‘검은 돈’의 세탁〓검은 돈을 보유한 B씨는 대리인의 차명계좌를 통해 장외에서 주식을 매입한다. 해당 기업이 3시장 종목으로 지정받게 되면 차명계좌로 매입한 가격 밑으로 매도주문을 낸다.

B씨는 실명계좌를 통해 같은 가격과 물량의 매수주문을 내보내 차명계좌의 주식을 명실상부한 자신의 재산으로 공식화한다. B씨가 차명계좌로 낸 매도주문은 매매차익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에 매도주문을 내면 세무당국의 눈에 띄어 ‘별건’으로 조사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최초 취득가 수준으로 팔되 사이버거래를 통해 동시에 사고 팔 수 있는 점을 활용하게 된다.

▽방지책은 없다〓현행 상속증여세법에는 장외주식의 경우 매매 당사자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면 신고액 대신 평가액에 따라 과세한다. 시세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넘기는 것을 막는 장치. 문제는 수많은 거래자들 중에서 누가 특수관계인인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

한 세무사는 “세무당국의 조사인력이 현재의 5배로 늘어나야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의 대부분의 변칙증여가 납세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셈. 다만 시가총액이 100억원이 넘는 대기업 지분을 3%이상 보유한 경우 대주주로 분류해 지분변동을 보고하는 ‘기장의무’가 있어 사후추적이 가능하다. 이 경우 양도세율도 최고 40%로 소액주주에 비해 훨씬 높다.

검은 돈의 세탁은 현행 금융실명제법이 차명거래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허점이 있다는 것.

<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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