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벤처기업가 '굽신 굽신'…광고대행사 '배짱'

  • 입력 2000년 3월 8일 19시 14분


IMF경제난으로 빅딜(사업 맞교환)이 한창이던 98년 LG반도체 홍보과장 이백수씨(38)는 벤처PR라는 홍보 대행사를 세웠다. 그는 LG반도체가 현대반도체에 넘어가자 사표를 내고 부하 직원 한 명과 함께 정보통신 관련 벤처기업을 전문으로 홍보하는 회사를 창업한 것. 요즘 당시와 완전히 달라진 홍보대행사의 위상에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싫으면 관두라" 배짱▼

1년전만 해도 고객사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공개 경쟁 프리젠테이션은 물론 회사 홍보담당 임원집을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나 요즘엔 홍보를 맡아달라고 찾아오는 기업을 면담하고 사업성과 성장 가능성 등을 따져 홍보대행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이다.

직원 6명이 한계수치를 넘어선 13개 회사의 홍보를 대행하고 있지만 계속 밀려드는 홍보 요청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 뜨겁게 일고 있는 인터넷 벤처기업 열풍으로 전통적인 강자인 ‘갑’과 약자인 ‘을’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수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갑’이 ‘을’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가 된 것.

불과 2년 전만해도 빌딩마다 하나 걸러 하나꼴로 임대 현수막을 걸어놨던 서울벤처밸리의 건물주들은 요즘 ‘웃돈’을 받아가며 입주할 업체를 따져 고르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입주희망 업체에 ‘턱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난색을 표할 경우 차액을 주식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 “싫으면 그만 두라”는 식의 배짱으로 업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광고 수주를 위해서 발이 닳도록 뛰어다녀야 했던 광고 영업자나 광고 대행사들도 입장이 바뀌었다. 일부 신문의 경우 원하는 날, 원하는 지면에 광고를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불과 1년 전만해도 광고주를 찾을 수 없었던 지하철 광고조차 요즘에는 몇 달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광고를 내보낼 수 없는 상황.

▼대기업도 구인 안간힘▼

한별텔레콤 여준영홍보팀장은 “꽤 큰 규모의 광고예산을 책정했지만 광고대행사들로부터 경쟁 프리젠테이션은 피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격세지감을 느꼈다”며 “광고를 만들어 놓고도 좋은 면을 잡으려면 또 한번의 경쟁을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 및 컨설팅을 해주는 웹에이전시들도 밀려드는 요청에 연일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웬만한 웹에이전시들은 일이 많아 프로젝트 진행 문의조차 받지 않는 실정이며 예산 규모가 큰 사업이 아니면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것이 보통. 홍익인터넷 노상범대표(35)는 “요즘에는 사업초기에 고객을 확보하러 여기저기 뛰어다녔던 게 꼭 꿈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 밖에 불과 수년 전만해도 손쉽게 신입사원을 뽑을 수 있었던 대기업 인력담당 직원들은 요즘 우수한 인력이 벤처기업으로 몰리면서 중소 규모 대학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입사원서를 돌리고 있다. 신입사원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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