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량中企들 "요즘 은행 갈 맛나네"…은행들 대출유치 경쟁

  • 입력 1999년 12월 22일 19시 59분


이달 중순부터 발간된 제일은행의 ‘단기 절세저축상품’ 안내 팜플렛에는 의류업체 센서스의 제품광고가 실려있다.

이 광고는 제일은행이 우량 중소기업을 단골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것. 골프의류 등을 생산하는 슈페리어와 자동차엔진오일 제조 및 판매업체인 한발의 제품도 이 은행 인쇄물에 무료로 등장한다.

100여만매의 팜플렛이 전국 350여개 영업점이 일제히 배포되자 해당기업측도 홍보효과에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 제일은행 영업지원부 박정일(朴正一)과장은 “우리 은행이 어려울 때 거래관계를 계속 유지해준 기업에 보답하려는 뜻도 담겨있다”며 “광고게재를 신청한 기업이 30여개에 이른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대출금리 인하 이후 촉발된 은행들의 우량 중소기업 확보전이 색다른 부가서비스 제공을 통한 ‘환심사기 마케팅’으로 경쟁양상이 바뀌고 있다. 불과 2년전 중소기업 사장이 은행 지점장을 만나기조차 힘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질 정도.

▽서비스가 다양해졌다〓신한은행은 올 한해 60여개 중소기업에 대해 경영자문 컨설팅을 시도해 고객관리면에서 큰 성과를 올렸다. 이 은행은 경영학 교수와 컨설팅업체 임원, 연구원 등으로 팀을 구성해 중소기업의 취약분야인 재무관리 등을 포함해 경영전반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다른 은행과 거래해온 유망 제약업체와 전자업체가 경영컨설팅에 ‘감동’해 신한은행에 주요 자금거래를 몰아주기로 약속했다는 후문.

외환은행은 수출업체가 운송회사에 나가지 않고 은행 지점에서 선적과 동시에 선하증권을 발급받아 곧바로 수출환어음을 할인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개설했다. 은행창구를 찾는 빈도가 잦으면 자연스레 단골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외환은행측의 계산.

기업은행은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무료로 만들어주는 한편 사이버 공간을 통해 중소기업간의 원자재 직거래를 알선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우수 중소기업주들을 ‘로열 비즈니스클럽’에 가입시켜 특별 관리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금리인하만으로는 한계〓은행들이 이처럼 부가서비스에 주력하는 것은 금리를 소폭 낮춰주는 정도로는 은행간 차별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

올들어 은행들이 앞다퉈 대출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우량 중기에 대한 일반 대출금리는 연 8% 초반까지 떨어졌고 어음할인은 연 6%대가 적용되고 있다. 자금 조달비용을 감안하면 아무리 우량기업이라도 이보다 더 낮추는 것은 무리라는게 은행 자금담당자들의 공통된 분석.

시중 자금사정이 풍부해진데다 직접금융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우량 기업들도 굳이 은행 돈을 빌려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여신은 부채비율 감축과 신용공여한도제 실시 등으로 계속 줄여야할 처지여서 남아도는 자금을 안정적으로 굴리려면 우량 중소기업을 공략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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