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관리체제가 한국경제 최대사건…10대사건 설문조사

  • 입력 1999년 12월 22일 19시 59분


한일합방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쌀 2가마 수준. 그러나 97년엔 쌀 40㎏짜리 100포대를 살 만큼 소득수준이 늘었다.

몸집이 커지면서 오일쇼크 등 외부충격의 ‘홍역’도 크게 앓았다. ‘3무(무자본 무자원 무기술)’를 타고난 우리경제는 개발 초기부터 세계경제의 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2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20세기 100년간 우리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으로 선정했다. 연구소 발표는 733명의 경제전문가와 네티즌을 대상으로 ‘100년 동안 한국경제 10대사건’을 설문조사한 결과.

▽한일합방, 8·15해방〓가장 중요도가 낮았다. 조선은 원료 생산지와 상품 수요지로 만들려는 일본에 의해 식민지 예속경제화의 길을 걸었다. 반면 해방은 자본주의적 국민경제 건설의 계기가 됐다.

▽한국전쟁〓산업기반이 대부분 파괴됐다. 농업중심의 사회가 해체되고 원조경제로 소비재공업과 3차산업이 비대해졌다. 남한은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체제로 편입됐고 미군의 원조를 토대로 재벌그룹의 모태가 출현.

▽5개년 계획, 새마을운동〓정부 주도 성장모델로 채택된 이후 60년대 중반 수출주도형 전략과 결합돼 큰 성과를 냈다. 그러나 주식자급에는 성공했지만 농어촌의 소득증대를 통한 경쟁력확보 문제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

▽경부고속도로 건설〓전국 ‘1일 생활권’ 시대를 열었다. 자동차의 대중화도 ‘고속으로’ 진전됐다.

▽1,2차 석유파동〓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전략에 제동이 걸리고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특히 2차 석유파동 때는 국내 정치불안까지 겹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3저 호황과 서울올림픽〓85년 선진5개국 정상회담(플라자회담)에서 엔화 절상에 합의한 후 환율 금리 유가가 모두 낮은 ‘3저시대’가 개막돼 우리경제는 최대 호황을 맞았다.

연구소는 이밖에 ‘반도체와 정보통신혁명’을 10대 사건에 포함하면서 “21세기 변혁의 핵심은 기술이며 그중에도 디지털이 주축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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