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10조이익에도 '주름살'…신규투자 막히고 내년전망 불투

  • 입력 1999년 11월 24일 18시 37분


재벌그룹들이 올해 엄청난 순이익을 내고도 고민이다.

이익의 내용이 시원찮은 데다 풍부한 자금을 사용할 곳이 별로 없는 탓이다.

여기에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이익규모를 부풀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우를 제외한 4대 재벌 구조조정본부가 잠정 집계한 세전이익 규모는 모두 합해 대략 10조7000억원대. 그룹별로는 D램과 이동통신단말기에서 ‘노다지’를 캔 삼성이 4조원 규모로 가장 많고 LG 3조원, 현대 2조원, SK 1조원대의 이익을 각각 챙겼다.

그러나 이익의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기뻐할 일이 못된다는 평가다.

LG그룹에서 가장 많은 이익을 낸 LG전자의 경우가 대표적. 총 3조3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세전이익 중 무려 2조8000억원 정도는 반도체와 LCD 지분매각으로 받은 특별이익이다. LG전자의 ‘미래’를 책임진 디스플레이와 백색가전 분야는 각각 1000억원과 1500억원의 세전이익에 그칠 전망.

나머지 그룹들도 장사를 잘했다기 보다는 부채규모 축소와 금리하락 등에 따른 금융비용 감축효과를 많이 봤다는 분석. 이때문에 증권가에는 “내년 그룹들의 이익이 올해만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면 이익을 관리해야 하는 구조조정본부는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긴 셈. 정부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논리에 따라 다른 재벌이 이미 참여한 사업에 신규 진출하는 것이 사실상 차단됐기 때문이다. 김영삼(金泳三)정권 초기 대규모 이익을 거둔 재벌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삼성) 철강(현대) 유통(대우 등)등에 경쟁적으로 참여, ‘중복과잉’이란 비난을 자초했다. 지금은 돈이 있어도 쓸 곳이 마땅치 않다.

삼성 관계자는 “우리는 물론 다른 그룹들도 향후 2,3년 동안은 과거처럼 특정사업에 조(兆)단위의 신규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4대재벌은 내년중 올해보다 20∼30% 정도 투자를 늘릴 계획이지만 그 규모는 IMF체제 이전수준에 못미치고 있다.

그렇다고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경영환경에서 임직원들의 복지수준을 파격적으로 끌어 올릴 수도 없는 노릇. 95년 3조원에 달하는 순익을 올렸던 삼성전자는 당시 직원들의 학원수강비는 물론 치과 치료비까지 대줬지만 올해는 성과급을 올리는 선에서 ‘얼버무릴’ 예정이다.

이 때문에 재벌들은 풍부한 자금으로 신규투자보다는 대규모 인수합병(M&A)전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미 데이콤 지분의 8%를 LG전자가 새로 인수하는 등 정보통신 발전 금융분야에서 그룹간 지분이동이 빈번하다.

각 그룹은 ‘경쟁그룹의 이익이 부풀려졌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당기순익이 대차대조표상 자본계정에 포함돼 부채비율 감축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