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설비활용 '윈윈전략'…식품업계등 他社시설 활용

  • 입력 1999년 9월 8일 19시 24분


‘신규투자를 하느니 차라리 적의 설비를 활용하라.’

IMF 관리체제로 아픈 경험을 겪은 기업들은 과잉설비와 과잉인력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최근 경기가 본격 회복되고 주문물량이 밀리자 설비를 늘리는 대신 경쟁사에 생산이나 판매를 맡기는 사례가 식품 및 제약업체에 확산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생산설비는 완전 가동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잘나가는 특정제품에 별도 투자하는 부담이 큰데다 언제 다시 경기가 위축돼 과잉설비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롯데제과는 7월 스낵제품 ‘오잉’을 내놓으면서 경쟁사인 한국야쿠르트에 생산을 맡겼다. 오잉은 월 15억원 어치나 팔리는 주력 제품이지만 수십억원의 설비투자를 하는 대신 생산라인에 여유가 있는 한국야쿠르트에 생산을 위탁한 것.

이에 따라 한국야쿠르트는 그동안 70∼80%에 불과했던 설비가동률이 80∼90%로 높아졌다.

롯데로부터 생산을 위탁받은 한국야쿠르트는 스포츠음료 ‘비트업’의 생산을 경쟁 음료생산업체인 한미식품에 맡겼다. 새로 시작한 스포츠음료사업에 필요한 자체설비를 마련하려면 40억∼100억원의 투자비가 필요하기 때문.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경쟁사의 과잉투자로 인해 업계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것을 막고 제품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사의 여유설비를 공동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밖에 식품업계에서도 빙그레가 ‘두유’의 생산을 연세유업에, 빙과제품 ‘아이스박스’의 생산을 삼립식품에 각각 맡기는 등 위탁생산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제일제당이 지난해 9월 조루증치료제 SS크림을 내놓으면서 국내 판매를 경쟁사인 태평양제약에 맡긴 것도 같은 사례.

원료의약품이나 치료제를 생산해 병원판매망만 갖고 있는 제일제당은 SS크림 한 제품을 위해 60∼100명의 별도 소매영업조직을 만드는 것은 과잉투자라고 판단했기 때문. 당시 국내 조루증치료제 시장은 50억원미만에 불과했기 때문에 섣불리 조직을 확대할 수도 없었다.

SS크림은 그러나 때마침 불어닥친 비아그라 신드롬과 함께 성관련 의약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판매가 급증, 올해 내수만 당초 예상의 두배가 넘는 1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태평양은 SS크림 이외에도 올 3월 노바티스사의 무좀약 ‘라미실’ 판매를 위탁받아 자사 대표상품인 관절염치료제 케토톱과 함께 공동마케팅을 펼치면서 소매판매력이 더욱 강화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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