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보광 전격세무조사 배경]재벌개혁 고삐죄기 신호탄

  • 입력 1999년 6월 29일 23시 51분


국세청이 29일 전격적으로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에 나선 것은 말그대로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삼성그룹에서 분리됐으며 중앙일보와 계열관계에 있는 보광그룹 계열사에 대해 국세청이 특별세무조사를 벌이는 것도 최근 삼성자동차 빅딜 등과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한진그룹측은 무엇 때문에 조사를 받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고 국세청은 ‘정치적 의미’나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국세청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긴 어렵다.

국세청은 이날 한진그룹 4개 계열사에 150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했다. 91년 11월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치참여로 미운털이 박혔던 현대그룹이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등 주력 계열사에 대한 전면 세무조사를 당했을 때도 투입인원은 90여명 정도였다.

95년 고 최종현(崔鍾賢)회장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때와 비교해봐도 재계랭킹 6위정도의 그룹에 대한 조사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조사가 국세청의 설명처럼 법인세 탈세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진그룹의 전반적인 경영비리를 포착, 오너가(家)에 혹독한 책임을 묻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이번에 조사대상에 포함된 정석기업은 조중훈(趙重勳) 그룹회장의 제주도목장 등 회장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도 “5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도 수시로 벌이고 있으며 이번 조사도 이와 같은 선상에서 봐달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한진에 대한 조사가 ‘특별 세무조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것도 개별사안에 대해 보안을 지켜온 국세청으로선 대단히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기세무조사는 특정사업연도 1년에 대해 회계장부를 조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반해 특별세무조사는 수년간의 경영실적에 대해 해당 기업의 거래처에 대한 조사는 물론 금융계좌 추적까지 샅샅이 뒤지게 된다. 그만큼 조사의 강도가 높고 규모가 크다.

특히 이번 특별세무조사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구조조정이 부진한 재벌에 대해 정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는 보광그룹 계열사에 대한 특별세무조사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배경이나 조사범위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어 자동차 빅딜 등 구조조정과 어느정도 연관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삼성그룹의 버티기로 자동차 빅딜이 약속된 시일을 넘긴 채 교착상태에 빠지는 등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해 정부가 세무조사라는 초고강도의 압박수단을 동원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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