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눈가림 감사」올해도?…회계법인 맘대로 교체

  • 입력 1999년 3월 17일 19시 31분


외환위기 이후 엄격해지던 대기업 회계감사가 다시 부실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감사수임료가 자율화돼 덤핑이 판치는데다 금융당국의 ‘감사인 강제배정’을 회피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탓이다. IMF 위기를 부른 부실 회계감사가 재연될 경우 대외신인도 악화는 물론 갓 기지개를 켠 기업간 인수합병에도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감사법인 맘대로 바꾼다〓A회계법인은 최근 98년 결산감사를 끝낸 상장기업 B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 그동안 대충 부풀려온 재고자산 평가를 엄격히 하고 장기간 받지 못한 외상매출금 등을 손실로 처리해 적자규모가 커지자 B사가 “앞으로는 일을 맡기지 않겠다”고 통보해온 것. 98년초 B사 부채비율이 높아 금융감독원(증권감독원)이 회계감사를 강제로 A법인에 맡겼지만 B사는 최근 감사인선임위원회를 구성, 까다로운 A사의 감사를 간단히 피해버렸다.

현행 외부감사법에 따르면 상장사가 같은 업종 평균 부채비율을 1.5배 넘어서면 정부가 감사인을 강제 배정, 엄격하게 감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부터 기업들이 △채권은행 △사내감사 △사외이사 등으로 선임위를 구성해 감사인을 교체할 수 있도록 ‘퇴로’를 만들어줘 당초 취지가 무색해졌다. A법인 관계자는 “선임위는 대주주의 입김을 강하게 받기 마련”이라며 “기업들의 ‘구미’에 맞는 회계법인만이 시장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격경쟁으로 ‘설상가상’〓상장기업들은 이달 주총에서 정한 회계감사법인과 내달중 정식 계약을 한다. 그러나 올들어 규제개혁 차원에서 감사수수료가 자율화된 뒤 덤핑경쟁이 벌어져 “지난해 수수료의 절반이라도 좋다”는 감사업체가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고객 확보를 위해 ‘부실을 눈감아 주는’ 과거 악습이 되살아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의 고영채전무는 “선진국형 회계감사가 이제 막 뿌리를 내리려는 상황에서 수임료가 자율화되는 바람에 감사인의 입지가 위축돼 부실감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부실감사 책임추궁 이뤄질까〓지난해 회계감사가 다소 엄격해진 것은 부실감사를 견제하는 세력이 급부상한 덕택. 중견 회계법인 C사가 최근 감사부실로 ‘1개월 영업정지’ 징계를 받은 사례는 회계사들에게 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들도 주총시즌을 맞아 부실감사 의혹을 사고 있는 회계법인 교체를 요구하는 등 공세를 높여왔다.

그러나 이미 정기주총을 마친 5대그룹 계열 상장사 대부분은 기존 감사법인과 재계약하기로 결정하자 기관투자가들의 공세가 엄포용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력 12년째인 L회계사는 “기업들은 기밀보호와 시간절약을 이유로 감사인 교체를 꺼린다”면서 “그러나 감사계약이 장기화할수록 감사의 엄격성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