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청문회/증인 진술]강경식씨『최악상황 예측못해』

  • 입력 1999년 1월 27일 08시 35분


▼강경식전경제부총리▼

―환율 등 위기상황을 미연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증인한테도 엄청난 책임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11월의 상황은 예측을 전혀 못한 것이다.”

―97년 3월11일 한국은행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는데 증인은 왜 그때 안이하게 대처했는가.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아니다. 협의를 하고 대책을 발표했다. 한국은행의 보고서 한줄에 ‘모든 것이 안될 때 IMF로 가야 한다’고….”

―가장 큰 책임은 김영삼전대통령과 증인이다.

“경제를 맡은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10월27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증인은 펀더멘털(기초여건)이 튼튼하니까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는가.

“그때 우리가 돈을 빌리려고 해도 국제시장에서 돈을 빌리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돈을 빌릴 수 있겠느냐 하는 쪽으로 백방으로 머리를 썼다.”

―IMF행이 천재와 인재 중 어느쪽이라고 생각하나.

“제대로 했으면, 건실했으면 막을 수 있었다.”

―증인의 자존심을 채우기 위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금융개혁법안을 추진하고 IMF행을 마지막까지 미루다 실기한 것 아니냐.

“금융개혁법안은 그 당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김인호전청와대경제수석 ▼

―김전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할 정도의 경제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가.

“최소한의 필요한 경제지식을 갖고 계셨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직자는 대통령에게 직언을 해야 하고 그것이 반영되지 않으면 사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보는데….

“세번 사의를 표명했는데 사의가 수리된 것이 11월19일이었다.”

―당시 대통령에게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나.

“당시 김대통령에게 어떤 때는 하루에도 두 세번씩 수시로 보고를 드렸고 김대통령께서도 그 같은 사실을 인정하고 계신다.”

―증인도 외환위기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싶은데 공감하는가.

“뭐 저더러 왜 좀더 전지전능하지 못했느냐 하고 추궁하신다면 할말이 없다. 저희도 밤잠을 자지 않고 노력했다.”

▼윤증현전재경원금융정책실장 ▼

―증인은 97년초 원화가 고평가돼 있고 이것이 외환위기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며 원화절하를 건의했다가 혼난 적이 있나.

“당시 저희는 환율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봤다. 한국은행과도 협의를 했는데 한국은행도 개인적으로는 우리 의견에 동조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부도유예협약은 금융권이나 은행감독원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대기업부도를 막으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 아니냐.

“그런 측면도 있다.”

▼박재윤전청와대경제수석 ▼

―증인이 세운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분명한 실패인데 인정을 안하는 것 같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이 5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장치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책임을 느낀다.”

―신경제 5개년 계획으로 중복과잉투자가 문제가 됨으로써 위기가 닥친 것 아니냐.

“중복 과잉투자가 문제가 됐다는 것은 인정하나 그것이 신경제 5개년 계획에 의해서 된 것은 아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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