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훈 장관 전격경질]정부 잇단 「빅딜비판」에 제동

  • 입력 1998년 12월 19일 08시 37분


대우전자의 탱크주의로 유명했던 배순훈(裵洵勳)정보통신부장관이 ‘설화(舌禍)’로 장관취임 10개월만에 중도 하차하는 불운을 맞았다.

배장관은 18일 저녁 정통부담당 기자들과의 송년만찬 도중 전화로 사표수리 방침을 통보받았다.

배장관은 만찬도중 자신의 경질설에 대해 기자들이 진위여부를 확인하자 “그렇게 빨리 알려지나”라고 혼자말처럼 내뱉었으며 그러고도 한동안 사표낸 사실을 부인했다.

배장관의 경질은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월례조찬회에서 행한 강연내용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발언〓배장관은 이날 사견임을 전제, “과잉설비의 해소가 빅딜의 기본정신인데 이 점에서 삼성자동차는 맞는 얘기지만 수출 위주의 대우전자를 포함시킨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배장관은 특히 “대우전자는 95%를 수출이 차지해 상당한 대외신인도를 쌓았으며 일본 NEC에 TV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수출, 소니와 비슷한 가격으로 팔렸다”면서 대우전자 제품이 품질면에서 손색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우가 국내 가전3사중 꼴찌라고 하지만 해외매출을 합치면 타사와 비슷하다”며 “느닷없이 ‘월드베스트’라는 삼성 마크를 붙여 팔 수 있느냐”고 표현, 대우의 전직 최고경영자로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평소에도 사석에서 “매출이 별로 없는 삼성자동차를 부채비율이 같다는 이유로 대우전자와 맞바꾸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파문확산〓이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파문은 급속히 확산됐다. 이에 대해 배장관은 “개인적 견해일뿐 국가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반대의사가 아니다. 현직장관인데 이렇게 저렇게 관여할 입장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배장관의 발언여파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최근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원들의 잇단 빅딜정책 비판과 관련, 정부의 재벌개혁 의지를 훼손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받아들여졌다.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정부 각료가 공개석상에서 어떻게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하노이에서 보고를 받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사려가 부족한 행동”이라며 몹시 불쾌해했다는 후문. 김대통령은 파문의 조기진정과 경고의 뜻으로 배장관의 문책을 결정했다는 후문.

▼실험으로 끝난 재임 10개월〓배장관은 취임초 “경쟁력없는 기업은 망해야 국가 경쟁력이 생긴다”, 관료사회의 병폐를 빗대서는 “관료들을 아예 아에로플로트에 태워 외국에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는 자주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결국 이익을 중시하는 민간기업과는 또다른 행정의 속성과 경험미숙 정치력 부족 등으로 관료조직을 장악하는데 한계를 보였다는 게 정통부 안팎의 평가.

특히 최근엔 국회에서 통신사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한도의 확대시기를 놓고 외자유치를 강조해온 배장관만 ‘왕따돌림’을 당했다는 얘기가 무성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 및 일부 기업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배장관의 돌연한 사표제출은 표면상 빅딜과 관련된 발언으로 비롯된 것이지만 주위에선 전문경영인 출신의 기업가적 능력을 텃세가 심한 관료사회에 접목시키는데 실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배장관은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재산파동으로 전격 해임된 주양자(朱良子)보건복지부장관, 박정수(朴定洙)외교통상부장관에 이어 3번째 단명 장관이 되고 말았다.

〈김학진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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