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사회주의 잔재 극복]東歐에「자본주의경영」심어라

  • 입력 1998년 10월 24일 19시 25분


96년 루마니아 흑해 연안에 있는 망갈리아 조선소를 인수했을 때 대우중공업 임직원들은 ‘사회주의가 왜 망했는지’ 그 실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애사심은 고사하고 매일 아침 결근율이 20%를 넘었다. 공장에 나와도 ‘남의 일’ 쳐다보듯 빈둥거리기 일쑤. 결근한 직원의 집을 찾아가도 가족은 “배 타고 나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었다.

조선소 곳곳엔 고철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나뒹굴었다. 한국직원이 “왜 안치우는가” 물으면 “장부에 잡혀있는 고철을 치우면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지기 어렵기 때문”이란 게 현장 직원의 답변. 간부사원들이 그리스 선주로부터 뇌물을 받고 헐값에 선박을 수주하면서 이중장부를 만든다는 얘기엔 기가 막혔다.

폴란드 루블린의 자동차법인 DMP에서는 환경미화 담당자가 비오는 날에도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곤했다. 작업현장에는 ‘라인이 멈춰서도 나는 상관없다’라는 사회주의식 무사안일이 판을 쳤다.

대우가 현지은행과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은행(95년 100% 투자법인으로 변경)의 현지 직원들은 “오전7시부터 고객을 받겠다”고 나서 본사 파견직원들이 한때 크게 감동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문한(金聞漢)은행장은 “며칠 뒤 현지 노동법에서 ‘1일 8시간 이상 근무금지’ 조항을 본 뒤 의문이 풀렸다”고 털어놓았다. 조기퇴근하려는 속셈이었던 것.

대우는 ‘사회주의 잔재청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동유럽내 10여개 대우 현지법인들은 일제히 당장 눈에 띄는 작업장 정리정돈부터 시작했다. DMP와 체코의 대우아비아(상용차법인)공장은 공구와 설비들을 재배치하고 작업장 바닥엔 페인트로 구획선을 그었다.

망갈리아 조선소는 무려 2년에 걸쳐 고철을 치웠다. 현지직원들은 대우 임원들조차 수시로 주변을 청소하는 것을 보며 ‘청소는 청소원들만의 업무’라는 고정관념을 버렸다. 특히 한국에 연수를 다녀온 직원들은 ‘자본주의 작업윤리’ 전파에 앞장섰다.

결근문제는 출근율을 매일 도표화해 게시판에 붙이는 방법으로 풀었다. 결근율이 낮을수록 공장의 가동률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져 ‘벌이’가 된다고 설득한 것. ‘잔업(殘業)왕’에겐 연봉에 맞먹는 파격적인 보너스를 줬다.

DMP는 최근 직원 6천여명을 대상으로 처음 ‘업무분석’을 실시해 임금계약을 체결했다. 작업효율에 따라 급여에 차이를 둬 경쟁심리를 자극하자는 것.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헝가리 대우은행은 초창기 ‘나는 모른다’라는 말을 ‘금기1호’로 정했다. 사회주의 시절 입출금 데스크와 현금출납 데스크가 따로 설치돼 한쪽에 고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도 다른 쪽은 딴전을 피우기 일쑤였던 것. 대우은행 관계자는 “이곳에선 창구직원들의 친절이 곧바로 은행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원스톱 서비스를 내세워 선진은행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경쟁을 두려워하면서도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을 급속히 체질화해가는 동유럽 국가들을 보면서 동유럽경제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적인 미래를 느끼게 됩니다.” 김문한행장의 말이다.

〈부다페스트·망갈리아(루마니아)〓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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