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정부 경제정책 중간성적표]「환란봉합 성공」

  • 입력 1998년 8월 26일 19시 53분


집권 6개월을 막 넘긴 김대중(金大中)정부는 외환위기를 조기에 수습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이라는 국가부도를 일단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관리경제를 촉발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부정적 시각이 많다. 재벌 금융 정부에 대한 개혁에서 요란한 발표가 이어졌을 뿐 국민이 실감하는 변화는 미미했다는 것.

또 실업대책 중소기업지원 재정금융 등 거시정책에서도 임기응변식 대응이 주류를 이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처럼 중간성적이 별로 좋지않게 나타난 요인으로는 국정 청사진이 불투명한데다 경제팀 내의 정책혼선, 공동정권 운영에 따른 추진력 미흡, 정치개혁 부진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태에서의 정치적 소모전이 경제의 새틀짜기와 총체적 경제위기 해소 등 김대중경제(DJ노믹스)의 순항을 가로막았다는 지적도 공존한다.

▼유권무죄 무권유죄(有權無罪 無權有罪)〓새 정부 개혁조치의 설득력이 약해진 것은 우선적 개혁대상보다는 주변적 대상, 이른바 힘없는 곳부터 개혁하려 한데서 크게 기인한다는 비판이다. 정치권 정부 재벌 등 개혁이 시급한 분야는 시간을 마냥 끌고 지방은행 국책연구소 공기업 및 그 근로자 등 힘없는 쪽만 수시로 칼질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것.

한국금융연구원의 모 연구위원은 “대기업 정책이 퇴색하면서 DJ노믹스는 핵심을 잃었다”며 “5대 그룹 구조조정은 이미 시기를 놓친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5대 재벌 구조조정은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10대 중복과잉투자 업종에 대한 광범위한 자율 구조조정안을 요구했으나 재계는 선뜻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기획예산위원회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프로그램만 해도 정부출연연구소(5월)→공기업(7월)→기타 산하단체(8월)로 만만한 곳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정부부문의 개혁시간표는 아직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산하기관에선 “힘없는 기관만 대상으로 하는 구조조정이 무슨 개혁이냐”는 불만의 소리가 높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추진해온 개혁조치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다. 금감위는 6월에 55개 부실기업과 5개 지방 및 군소은행의 퇴출을 발표했다. 8월엔 국제 BYC 태양 고려생명 등 4개 생보사의 퇴출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 등은 “규모가 작아 정리하기 쉬운 곳만 고른 감이 있다”며 “과감한 구조개선이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사라지지 않은 정치논리와 관치관행〓개별사업장의 문제인 현대자동차 노사문제에 정치권이 개입한 것은 구조조정의 포기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대일(金大逸)연구위원은 “기업의 정리해고는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인데 정부가 정치논리 때문에 이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을 폈다”고 질타했다. 경제논리의 핵심인 구조조정을 정치논리로 풀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는 것.

또 5개 퇴출은행 실적배당상품의 원금보장은 납세자 부담 최소화 원칙에 위배되고 일관성도 없다는 지적이다. 보험사의 구조조정에서도 한국보증보험과 대한보증보험은 부실이 4개 퇴출 생보사보다 훨씬 심한데도 정부지원을 통한 회생으로 결론이 났다.

또 김대중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측은 ‘시장경제’와 ‘민간자율’을 끊임없이 강조하지만 현장에서는 관치관행이 더욱 구조화하고 있다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온다.

시중은행의 모 임원은 “정부는 시장경제원칙을 표방하며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팔을 비트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차라리 드러내놓고 하는 관치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고 말했다.

▼방치되고 있는 시한폭탄, 실업문제〓김대중정부 6개월간의 실업대책은 초반에는 방향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공공근로사업의 경우 도시근로자에게 황소개구리잡기와 산림녹화사업 등 현실성이 적은 사업을 제시했다. 결국 실직자 보다는 노인과 가정주부 등을 위한 근로사업이 되고 말았다.

또 4∼7월중 이뤄진 실직자 대출의 경우 예산으로 잡힌 2조8백억원중 1천1백40억원만 집행되는 등 1차 실업대책비 집행예정액 7조1백14억원중 38%만 소화됐다.

1월중 93만4천명이었던 실업자는 7월에는 1백65만여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통계에는 아예 구직할 의사를 포기한 비경제활동인구 50만∼60만명과 일시 휴직자 18만여명이 빠진 것이어서 이를 합칠 경우 사실상의 실업자는 이미 2백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다른 경제정책에서도 적지 않게 나타났지만 실업대책 역시 그 효과가 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과 관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경제장관은 없고 경제대통령만 있다〓김대통령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국가위기를 맞아 스스로 경제장관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각부처 장관들이 ‘국장급으로 전락’하면서 각종 경제정책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과거 정권에서 나타났던 경제 관료들의 복지부동 현상도 별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소리가 관료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고려대 장하성(張夏成)교수는 “현재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주요 장관 중에는 대통령과 정책노선이 다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개발 관치경제에 길들여진 사람들로는 DJ노믹스를 구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모교수는 “실업 경기부양 금리 환율 등의 대책도 임기응변식으로 이뤄지면서 각 대책간의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이같은 혼선은 IMF프로그램을 이행하는 수준을 넘어선 국정 청사진이 없는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규진·박현진·천광암기자〉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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