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회장「인원조정 연기」발언]「정리해고」혼선 우려

  • 입력 1998년 7월 20일 19시 33분


‘인원조정은 경기가 좋아진 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김우중(金宇中)대우회장의 발언이 정리해고를 앞둔 재계와 노동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재계는 김회장이 전경련회장대행 자격으로 전경련 공식행사 기조연설에서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노사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크게 우려하며 발언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파문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20일 대우자동차가 노조측에 2천9백95명의 인원정리 및 대상자 선정계획을 통보함에 따라 재계는 앞뒤가 맞지 않은 김회장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의아해하고 있다.

실제 김회장의 발언이 있자 노동계가 즉각 “노동계의 요구를 뒤늦게 수용한 것으로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여 산업현장에서 정리해고를 놓고 큰 혼선이 빚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회장 발언 하루 뒤인 20일 전경련 하계세미나에 참석한 정세영(鄭世永)현대자동차명예회장은 ‘경영자의 역할과 리더십’이란 주제 강연에서 “근로자와 기업이 법과 제도의 틀속에서 움직여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노조원들이 정리해고를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정회장은 ‘김회장 발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회장 생각과 내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다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현대그룹의 한 관계자는 “정리해고를 안하는 게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각자 처한 사정에 따라 내린 최선의 결정을 다른 기업총수가 그렇게 왈가왈부할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하계세미나에 참석한 1백50여명의 주요그룹 관계자들은 19일까지만 해도 김회장 발언이 정부측과 ‘사전교감’을 거친 것으로 해석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코앞에 닥친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재계에 정리해고 시기를 늦춰달라고 완곡히 요청하지 않았겠느냐”는 풀이도 있었다.

이와 관련, 20일 오전 세미나 연사로 참석한 강봉균(康奉均)대통령경제수석은 “노사정이 연초에 합의한 정리해고를 단행하지 못한다면 경제 구조조정은 물론 대외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한 톤으로 필요성을 강조, 이를 일축했다.

전경련측은 파문이 확산되자 “갑작스러운 대규모 인원감축이 역(逆)으로 기업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발언일 뿐”이라고 해명,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김회장이 재계의 ‘개혁전도사’를 자임하면서 기업들의 개혁논리를 개발 전파해왔음을 감안할 때 ‘실언(失言)’으로 치부하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대우측은 김회장의 발언이 ‘인원조정보다 임금삭감’을 내건 김회장의 평소 지론과 경영구상을 반영한 것일 뿐 확대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전경련 회장’자격으로 한 이번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더욱이 김회장 발언 하루 뒤 대우자동차가 대대적인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해 재계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김회장의 발언이 특정기업을 겨냥하지는 않았겠지만 자칫하면 재계 전체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고용조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오해를 볼러올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구조조정의 시기가 늦어지면 한국경제의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라며 “이런 분위기를 모를 리 없는 김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정리해고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한 것은 진의가 무엇인지 매우 혼란스럽고 노동자를 부추길 우려까지 있다”고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 한국노총 대변인 최대열(崔大烈)국장은 “전경련회장대행의 이같은 발언은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바를 뒤늦게나마 수용한 것으로 일단 환영한다”며 “현대자동차의 대량해고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이같은 반응은 상황전개에 따라서는 김회장의 발언이 새로운 분쟁을 촉발하는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재계 일부에선 김회장이 최근 폴란드에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적극 중재하겠다고 나선 것도 그 배경을 의아하게 보고 있다.김회장은 폴란드발언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으로 빅딜을 중개하겠다고 밝혔는데 현대 삼성 LG의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이런 방안이 있을 지에 의문을 표시한다.

노사문제와 빅딜에 대한 일련의 김회장 발언은 진의야 어찌 됐든지 전경련 차기회장으로서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고 이로 인해 김회장의 이미지도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될 것으로 전경련은 우려하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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