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 잇단 出禁배경]「재벌司正」에 움츠린 정치권

  • 입력 1998년 6월 10일 19시 57분


기아 청구 동아 해태 등 부실기업 오너 및 경영인들에 대한 사정작업이 확산일로에 있다.

기아와 청구그룹에 대한 검찰수사는 비자금 조성과 내용에 대한 파악을 이미 끝내고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면서 정치권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동아그룹 등 부실기업 경영 책임자들에 대해 사정기관이 잇달아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조치가 곧 경제계 전반에 대한 사정수사로 이어질 것인지에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사정기관이 출국금지한 것으로 공식 확인한 사람은 동아그룹 최원석(崔元碩)전회장과 유성용(柳成鏞)전동아건설 사장 등이다.

이들과 함께 출국금지된 것으로 보도된 H, S, N그룹 등 10여개 대기업 총수들에 대해 법무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공식적으로는 ‘출국을 금지하거나 요청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고위관계자는 “출국금지된 사람은 최회장 이외에도 여러명 더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인이 정식 출국금지 대상은 아니지만 출국시 통보대상으로 분류돼 사실상 출입국을 감시당하는 처지에 있다”고 말했다.

재벌총수와 경영 책임자들의 출국이 금지된 배경에 대해 주무부처인 법무부와 검찰 금감위는 ‘부실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검찰 고위관계자도 “이들 기업에 대한 출국금지는 검찰과는 무관하며 검찰은 이미 수사가 진행중인 기업 이외에 어떤 기업에 대해서도 수사의 단서를 포착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는 이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서울지검 중견검사는 “금감위가 나서서 출국을 금지했다면 이미 청와대와의 교감(交感)이 있었거나 하명(下命)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K변호사는 “정부도 국민을 설득하고 노동계와 실직자들에 대한 형평을 기하는 차원에서라도 기업부실에 대한 책임 소재는 밝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에게 사정의 한파가 몰아칠 조짐을 보이면서 정치권 내부에도 긴장감이 확산되고 있다.

모두들 말은 않지만 언제 어디서 불똥이 튈지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특히 기아 김선홍(金善弘), 청구 장수홍(張壽弘)전회장에 대한 수사는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야권 중진인 K의원이 청구와 관련,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검찰 수사의 명분은 “부실경영으로 국민에게 큰 손해를 끼친 경영주들의 재산은닉 등 범죄혐의를 추적, 사법처리하겠다”는 것.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검찰의 사정칼날이 기업인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인을 치면, 정치권이 떤다’는 속설처럼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으로 불길이 비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계개편을 앞두고 확대되고 있는 검찰수사가 정치권, 특히 야당과 구조조정에 반발하는 재벌을 겨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여권은 물론 이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국민회의 핵심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 누가 검찰수사를 보복사정이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청구 해태 동아그룹 경영진에 대한 검찰 조사에 의혹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즉 검찰수사가 기업인 사정보다는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야당 압박용’이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특히 청구와 해태에 대한 조사는 당내 일부 중진의원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청구그룹의 로비의혹을 사고 있는 K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후원회원인 청구사장을 통해 공식후원금으로 5백만원씩 세차례 받은 적은 있지만 그외에 비공식적 정치자금 등은 일절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K의원측은 “해태그룹에서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는데도 여권과 검찰이 헛소문을 흘리는 것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위한 협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철·이수형·윤영찬기자〉full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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