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6개월/기업]「돈줄찾아 3만리」…매출 줄기만

  • 입력 1998년 5월 25일 20시 02분


지난해 15조원대 매출을 올렸던 S그룹.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가 가동된 지난 6개월동안 매일 매일이 악몽이다. 그동안 강남의 호텔과 제지, 해외 시멘트공장 등을 팔아 3억5천만달러를 조달했지만 은행 빚 갚으랴 공장 돌리랴 여기저기 급한 곳을 때우다 보니 눈깜짝할 사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

그룹 매출은 내수침체로 25∼30% 정도 줄어 하루하루가 어음결제로 피가 마른다. 그룹 전체적으로 현금흐름에 초비상이 걸렸다. 인건비를 30% 이상 줄이고 여간해선 ‘관리’하지 않았던 공장 고정비까지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지만 솔직히 말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내일’이 겁난다.

자동차공장을 판 데 이어 최근 나머지 주력사와 부동산을 깡끄리 끌어모아 매물로 내놓았지만 요즘엔 ‘입질’하는 외국기업들조차 찾기 어렵다. 연 20%를 넘는 금리를 감수하며 은행권에 자꾸 손을 벌리다보니 차입금은 눈덩이처럼 늘어난 상태. 이 그룹 관계자는 “자금담당들은 매일 밤 12시를 넘기도록 은행과 ‘하소연반 위협반’ 흥정을 벌인 뒤 퇴근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3천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던 중견기업 N사. 매출의 15%에 달하는 판매관리비를 반으로 줄이는 감량경영을 펼쳤지만 금리비용이 엄청나 별무소용이다. 자금팀 관계자들 사이엔 ‘올때까지 왔다’는 절망감이 팽배하다. 그나마 정부가 기업어음 만기를 잇따라 두차례 연장해줘 ‘파국’은 피했지만 갈수록 불안한 한계상황의 연속이다.

연초 상호지보 해소에 진땀을 흘린 B그룹. 주력 반도체사업은 환율상승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지만 건설 시계 등 다른 사업부의 매출이 급전직하, 현금흐름에 애로를 겪다못해 결국 14개 계열사를 4개로 줄이는 그룹 축소계획을 은행에 제출,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5대 그룹도 최악의 유동성위기는 넘겼지만 그룹 전체가 ‘골병’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빚으로 빚을 갚고 경상경비도 상당 부분이 외부차입이다.

올 들어 국내외 매출이 8% 줄어든 H자동차. 작년 매출 12조원중 4백65억원의 이익을 올리는 데 그쳤던 이 회사는 올들어 가동률이 40%대로 급락했는데도 인건비와 생산시설 운영비 지출은 지난해와 비슷해 비상이 걸렸다. 자칫 연 8천억∼9천억원씩 들어가는 신제품 개발도 중단될 처지.

유동성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 12월 4대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는 모두 6조6천억원. 분기마다 3천억원대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매출이 30% 이상 줄어 이 정도 순익을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자유치까지 지지부진해 (사모)사채나 기업어음 발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5대그룹의 경우도 연말쯤 가면 금융부실이 심화되어 그룹존립 자체가 중대한 국면에 빠질 것이라고 재계는 우려한다.

그나마 5대그룹에 재무구조가 나은 몇개 그룹을 제외한 여타 기업들은 할말을 잊은 듯한 분위기. 중견그룹 D사의 한 관계자는 “돈이란 돈은 다 끌어다 목숨은 지탱하고 있지만 사실 내일이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영이·박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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