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현황-전망]국내기업『달러라면 뭐든지 팔겠다』

  • 입력 1998년 3월 29일 20시 04분


국내 기업들의 외자유치 활동이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신청 이후 29일까지 기업들이 끌어들였거나 유치가 거의 굳어진 외화는 발표된 것만 71억달러(현재 환율기준 약10조원)규모.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는 대기업들이 국내 차입길이 막히자 기업 생존 차원에서 외국기업을 맹렬히 끌어들인 결과다.

현대전자가 미국 현지법인 심비오스사를 7억8천만달러에 팔아치운 것을 비롯해 3대 그룹이 각각 7억달러 이상을 사업부 매각이나 외상수입 등으로 들여왔다. 대상의 라이신사업부 매각(6억달러), 대한항공의 항공기매각(2억7천만달러) 등 중견그룹들도 팔 만한 것은 모두 시장에 내놓는 ‘총력세일’을 펼친 덕택으로 재무구조 개선에 다소 숨통이 트였다.

▼올해내에 1백50억달러 들어온다〓법무법인 및 외국금융기관 관계자들은 IMF체제 반년이 지난 5월쯤부터 외국기업 진출이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금리 고환율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해외차입 여건도 개선되기 어려워 국내기업들의 ‘팔아치우기’는 더욱 광범위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

삼성그룹은 현재 미 인텔사에 지분을 매각(10억달러)하는 방안과 골드만삭스로부터의 차입(20억달러)을 추진중이다. SK㈜ 대우중공업 한라제지 한솔PCS 등 비교적 알짜배기 기업들의 외자유치 계획이 현실화하면 올해에만 대략 1백50억달러 정도가 국내에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외자유치 수단 다양해졌다〓IMF이전 국내기업들의 외화조달 방식은 전환사채(CB)나 변동금리부채권(FRN) 등 유가증권 발행이 대부분. 최근 ㈜대우가 사우디 알 왈리드왕자에게 1억달러어치 CB를 매각했지만 대외신인도가 낮은 다른 기업에 이 방식은 ‘그림의 떡’.

이에 따라 부채와 자산을 분리하거나 계열사 담보를 제공하는 낯설은 방식이 등장했다. 대상그룹이 라이신사업의 부채는 그대로 안고 자산만을 독일 바스프사에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LG정유가 LG전자가 보유한 LG반도체 주식을 담보로 밀어넣고 칼텍스사로부터 외상원유를 들여온 것도 이채로운 방식.

한라그룹 이미 로스차일드투자은행을 끌어들여 10억달러를 조달한 ‘브리지론’방식은 우리나라에선 첫 사례. 덕택에 로스차일드엔 막다른 지경에 몰려 한계사업을 팔아치우려는 국내기업들의 문의가 잇따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토종기업의 개념이 바뀐다〓쌍용제지를 지난해 인수한 미국 P&G는 아직도 현 상호를 그대로 쓰고 있다. 쌍용처럼 국내 배외(排外)감정 등을 우려, 판촉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존 상호를 그대로 쓰는 기업은 더욱 늘어나는 추세.

기아자동차나 현대자동차처럼 이미 외국인 지분이 2대주주에 육박하는 대기업도 적지 않다. 앞으로 상당수 기업이 외국인 소유로 넘어가면 토종기업과 외국기업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굳이 구별할 근거를 찾기도 쉽지않을 전망.

〈박래정·김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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