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금사 감독소홀이「換亂의 씨앗」…재경원,인수위 보고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4분


재정경제원 실무팀이 외환사정이 절박하다는 것을 인지, 상부에 보고한 시점은 작년 8월말 경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그때쯤 심각한 외환사정에 대한 보고를 받고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재경원으로부터 외환위기와 관련한 보고를 받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는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재경원 실무팀은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문서화한 것은 11월7일이었다고 밝혔다. 재경원 실무팀은 이어 당시 강경식(姜慶植)경제부총리가 이를 언제 어떻게 김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는 잘 모르나 11월7일부터 15일사이에 보고를 한 것 같다고 밝혔다. 다음은 인수위가 밝힌 재경원 윤증현(尹增鉉)금융정책실장의 보고 요지 및 그에 대한 인수위의 진단. ▼윤실장 보고〓작년 1월부터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에 대해 당시 강경식경제부총리 등에게 많은 보고를 했다. 특히 한보사태의 영향으로 3월말경부터는 중장기외채 차입이 중단돼 사정이 심각했다. 3월26일 한국은행이 재경원과 청와대에 ‘IMF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의 차입 등 비상대책 강구’를 건의한 것은 외환위기 도래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 중 하나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5월 이후 7월까지는 외환보유고가 괜찮았다. 기아사태의 여파로 8월말 이후 사정이 아주 좋지 않게 됐다. 그때부터는 종금사의 단기외채 차입조차 끊겨 어려움이 가중됐다. 8월25일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대책을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9월 이후 10월초까지는 외환보유고가 다소 호전돼 잘 수습될줄 알았다. 10월 하순부터 외환사정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22일 기아에 대한 법정관리방침이 발표되고 23일 홍콩 증시가 폭락,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에 전파될 조짐이 나타나자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낮췄다. 그래도 IMF구제금융만은 피하려고 했다. 당시 가용외환보유고는 2백23억달러였으나 11월말 외환보유고는 73억달러로 한달사이 1백50억달러가 줄어든 것은 환율방어를 위해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10월27일부터는 김인호(金仁浩)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최연종(崔然宗)한은부총재 등 3인이 모여 외환위기에 대한 논의를 계속했다.11월16일미셸 캉드쉬IMF총재의 극비방한은 재경원이 김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초청한 것이었다. ▼인수위 진단〓재경원과 한은의 정보채널에 구멍이 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현재 그 원인을 규명 중이다. 환율자유화 조치 등 재경원의 대처가 늦은 것은 강전부총리가 환율 방어와 금융개혁법안 통과에만 집착한 때문인 것 같다. 재경원과 한은의 보고를 종합해 볼 때 외환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경유착에 의한 관치금융으로 기업의 과다차입구조를 방치한 데 있으나 직접적인 원인은 종금사에 대한 감독소홀과 기아사태의 장기화라고 할 수 있다. 94년 이후 종금사를 24개나 무더기로 허가해 놓고 무분별한 단기외채차입을 방치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이를 챙기기 시작한 것은 많은 문제가 있다. 〈임채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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