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영수회담 의미]차입금도입 「정치권합의」모양새 갖춰

  • 입력 1997년 11월 21일 19시 48분


2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영수회담에는 국민신당의 이인제(李仁濟)후보와 이만섭(李萬燮)총재가 불참, 「반쪽회담」으로 열렸다. 회동 명분이 「초(超)당파적 경제난 극복」이었지만 한나라당 역시 막판까지 참석과 불참 사이에서 혼란상을 보여 『당리당략을 앞세웠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그럼에도 이날 5자회동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자금 차입필요성에 대해 정치권의 공감대를 이루고 금융개혁 관련법안의 조기처리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 김영삼(金泳三)대통령으로서는 나름대로 성과를 올린 셈이다. 청와대측은 이날 오전의 비상경제 대책자문위와 저녁의 경제영수회담, 22일의 언론사대표 초청 모임과 대(對)국민담화 등을 IMF 구제금융신청을 위한 명분축적의 수순으로 상정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정부가 주도해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할 경우 쏟아질 경제실정에 대한 비판여론을 「정치권 합의」란 명분을 앞세워 순화시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청와대측이 『22일 담화내용에 영수회담 결과도 반영될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대통령은 또 이 시점에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이 과연 옳으냐는 비판여론에 대해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부수적인 성과도 올렸다. 청와대는 당초 이날 회동후 이회창(李會昌)후보와의 단독면담을 추진, 이후보의 김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로 악화됐던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의 모습을 연출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으나 이후보측의 부정적인 입장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비록 다자회동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후보와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짐을 덜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날 회동에 국민신당측이 「YS(김대통령)와의 차별화」를 내세우며 불참한 것은 김대통령에게 또 다른 정치적 부담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청와대 신당지원설」로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피해를 본 국민신당측은 김대통령과 집권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을 묶어 경제실정을 집중공격한다는 전략이어서 청와대로선 한 짐을 덜고 또 다른 짐을 지게 된 셈이다. 〈이동관·이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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