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지원 신청방침]「경제주권」상실 2류국가 전락

  • 입력 1997년 11월 21일 19시 48분


한국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한 것은 사실상 경제분야의 신탁통치를 받게 됐음을 의미한다. 외환위기를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IMF의 손에 우리 경제의 운명을 맡긴 꼴이기 때문이다. IMF는 돈을 빌려주는 대신 우리의 재정 금융정책은 물론 기업의 투자, 노사관계, 소비생활 등 경제생활 전반을 「간섭」하게 된다. IMF로선 6백억달러(60조원) 이상을 아무런 담보없이 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담보는 한국의 경제주권이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는 경제주권을 빼앗긴 이류(二流)국가라는 불명예를 국제사회에서 한동안 안고 다녀야 한다. 더욱이 선진국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 1년만에 국제적 망신을 당하게 된 것이다. 진로와 대농 기아가 부도유예협약을 신청한 뒤 채권금융단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국제 빚쟁이들로부터 시시콜콜 간섭당하게 됐다. ▼ 용이 지렁이로 변한 이유 이같이 참담한 지경에 처하게 된 것은 △대기업 연쇄부도 △이에 따른 부실금융기관의 속출 △대외신인도 하락 △경제정책의 실패 등에 기인한다. 기아사태만 해도 기업총수와 경제정책 최고책임자간 감정싸움을 벌이며 3개월간을 질질 끌다가 기초체력을 완전히 소진해 버리고 말았다. 정책당국은 「모든 게 잘 될 것」이란 근거없는 낙관론으로 일관하면서 한국시장을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정부를 믿었던 기업과 투자자들만 엄청난 피해를 보고 말았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정부가 기아사태 직후 금융안정대책을 내놓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맞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기(失機)를 거듭한 끝에 나라 경제를 결딴내고 말았다』고 분개했다. ▼ 국제 망신 정부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 등의 개별지원을 요구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특히 루빈 미 재무장관은 『IMF를 통하지 않은 지원은 없다』고 선언, 우리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게 돼 버린 것. 세계경제를 조율하는 입장의 미국으로선 특정국가에 개별지원을 할 경우 다른 국가들의 외화위기에도 마찬가지로 대응, 미국재정이 견뎌내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었다. 게다가 일본에도 기대를걸어봤지만엉뚱하게 독도문제를 언급하는 등 아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망신을 당한 끝에 한국은 급기야 극비리에 방한한 캉드시 IMF총재에게 구제금융 의사를 밝힌 뒤 결국 20일 오후 피셔 IMF부총재와 구제금융의 규모와 지원시기를 최종 조율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 한국경제 어디로 가나 재경원 고위관계자는 『(IMF구제금융 신청으로) 향후 5년간 마이너스성장까지 각오해야 하며 기업과 근로자, 정부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말했다. IMF는 저성장정책 및 긴축재정, 물가안정 등을 추진하도록 유도할 것이 확실시돼 수년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부 기업 근로자 등 각 경제주체들의 고통이 불가피하게 수반된다. 부실금융기관의 정리 등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며 대량 실업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IMF구제금융과 지원조건을 역으로 활용하면 양약(良藥)이 될 것이란 분석도 만만치 않다. 우선 당장 외화가 유입돼 외환위기는 일단 넘길 수 있게 된다. 또 거품성장에 길들여진 한국경제를 다시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의 힘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확고히 하는 기회도 된다는 것이다. 멕시코가 IMF구제금융으로 2∼3년간 고통을 겪은 뒤 지금은 탄탄한 성장을 하고 있는 사례는 우리의 교훈이 된다.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로 휘청거리고 있지만 한편으론 성장률과 물가, 균형재정 등 주요 거시지표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해 주고 있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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