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어음회수 과정]최종부도 모면 「희한한 드라마」

  • 입력 1997년 10월 11일 07시 46분


쌍방울그룹이 10일 최종부도 직전까지 갔다가 이를 모면한 과정은 금융권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어음회수 드라마」였다. 당초 ㈜쌍방울이 9일 1차 부도를 낸 것부터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 금융권과 업계는 종합금융사들의 자금회수 자제결의로 쌍방울이 부도위기에서 탈출한 것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런데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갑자기 ㈜쌍방울이 연대보증을 서면서 담보로 맡긴 백지어음을 돌려버린 것. BOA의 한 관계자는 『㈜쌍방울측에서는 자신들이 이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10일 오전 1차 부도사실이 증권시장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금융권에는 최종부도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으며 오후 1시 이후에는 차츰 기정사실화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기업의 신용이 나빠졌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대출금 상환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은행의 법적 권리이자 관행입니다. 서울지점에서도 본점에 상환을 유예하도록 의견을 개진하려 하지만 그쪽이 밤이라 연락이 안됩니다. 우리로서는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습니다』(BOA관계자의 오후2시경 발언) 오후 3시가 되자 쌍방울 측에서는 최종부도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 기자회견을 통해 『BOA가 견질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기일 전의 어음을 돌리는 바람에 자금부족으로 불가피하게 부도를 냈다』고 공식발표했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넘자 사태가 극적으로 반전했다. 금융계에는 「청와대에서 쌍방울을 살리기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BOA 서울지점 측은 은행감독원에 『어음의 지급요청을 취소할 방법이 있느냐』고 전화문의를 한 뒤 곧바로 회의를 시작했다. 같은 시간 은감원에서도 실무자들이 머리를 맞댄 채 회의를 시작했다. 『부도를 취소하려면 누군가가 90억2천만원을 입금시켜야 하는데 큰일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음의 지급제시를 받은 제일은행이 1차 부도 신고를 실수로 했다고 하면 모든 것이 없었던 일로 된다. 제일은행이 벌칙금 10만원만 물면 된다』 이같은 묘안이 제시된 오후 4시40분쯤 BOA는 『어음 돌린 것은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밝혔다. BOA측은 그러나 이날 밤 8시17분경 다시 어음대금을 대신 입금했다. 은감원 측은 『채권회 수요청을 철회하게 된 납득할 만한 경위서를 낼 수 없어 결국 편법을 선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극히 이례적인 어음회수극에 대해 금융계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호남연고 기업들의 무더기 도산을 우려한 정부가 BOA를 움직였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천광암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