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301조 충격]「자동차전쟁」 기선제압 카드

  • 입력 1997년 10월 2일 19시 55분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시장에 대해 슈퍼301조를 발동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시장개방에 필요한 개선 조치를 취할 준비가 안돼 있어서』라고 설명했으나 단순히 한국의 시장개방 속도 때문에 이같은 강경책을 썼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자동차제조업자협회(AAMA)의 앤드루 카드회장은 한국시장에서의 수입자동차 시장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같은 조건 아래서 미국산 차는 안 팔리지만 유럽산 차는 비교적잘 팔리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전략적 정치적 차원에서 슈퍼301조를 발동한 감이 있다. 전략적으로는 한마디로 「기선 제압」이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자동차문제에 대한 미국의 이익과 입장을 분명히 해둬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얘기다. 이것은 물론 『한국은 강하게 두드리면 열리는 나라』라는 기본 인식의 소산이기도 하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급성장에 대해서도 미국은 사전에 제동을 걸어두고 싶었을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보편적인 지적이다. 2000년이 되면 한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능력은 6백만대에 이른다. 내수용 자동차수를 생산량의 절반 정도로 본다면 2000년에는 한 해에 무려 2,3백만대의 자동차가 남아돌게 된다. 이 남아도는 차들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져 나올 경우 미국 자동차들이 입게 될 타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미국은 이미 인도네시아의 국민차 생산 경쟁에서 GM이 기아에 졌다. 폴란드 진출에서도 대우에 선수를 뺏겼다. 더욱이 현대 기아 등 한국의 자동차업체들은 최근 내수시장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미국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AAMA가 최근 클린턴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한국의 자동차 생산능력을 그대로 놔두면 미국은 자동차 수출에서 앞으로 수십억달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예다. 백악관이 추진 중인 무역협상 신속처리권한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들이 유력하다. 클린턴은 대통령이 무역협상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신속처리권 표결을 앞두고 클린턴으로서는 통상문제에 대해 단호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 실제로 클린턴은 95년 5월 일본 자동차시장의 폐쇄성을 이유로 무역보복을 결정함으로써 국내에서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급상승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번 슈퍼301조 발동은 결국 미국의 통상이익이 전통적인 한미(韓美) 안보동맹관계에 우선함을 보여줘 달라진 한미관계를 상징하고 있다. 〈워싱턴〓이재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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