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신용위기]『팔짱 낀 정부에 原罪』

  • 입력 1997년 8월 22일 20시 08분


최근 자금시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신용위기의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정부 일각과 일부 언론은 기아그룹을 현재 야기되고 있는 자금시장 혼란의 유일한 「피의자」로 몰아가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업 부도난다」는 책을 쓴 李定祚(이정조) 향영21세기리스크컨설팅대표는 『신용위기의 초기 조짐이 지난 4월중순부터 나타났는데도 팔짱을 낀 정부에 원죄(原罪)가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부가 특정그룹과 연계, 「대기업의 부도위기〓구조조정의 타이밍」이라는 논리를 펴자 금융기관들이 「믿을 기업은 없다. 안 떼이려면 미리미리 회수하는 게 최선」이라는 공감대를 갖게 됐고 그 결과로 신용위기가 깊어졌다는 것. 더구나 삼성그룹의 「기아 인수 등에 관한 보고서」 내용이 밝혀지자 금융계 일각에서는 『신용불안이 위기상황으로 악화한데는 정부의 무책임과 일부 그룹의 음모성 정보조작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재정경제원은 금융시장 위기와 관련, 최근까지도 「위기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기아사태로 인한 단기 교란요인으로 일시적 환율 금리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인식을 보여왔다. 재경원은 이같은 입장에서 『기아사태의 해결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며 해결의 지름길은 金善弘(김선홍)회장의 경영권 포기』라고 주장하면서 금융외환위기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국 신용평가기관인 S&P가 제일은행의 신용도 하향조정 가능성을 제기하자 뒤늦게 금융외환위기가 심상찮다는 인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 두면 멀쩡한 기업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해도 정부는 못들은 체했으며 지난 6,7월에는 시중은행장 점지놀음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기업과 기업, 기업과 금융기관, 금융기관과 금융기관 사이에 믿음이 계속 무너지는 판에 정부는 정책의 실기(失期) 이전에 「무대책」으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한국은행 관계자들은 『한보 삼미와는 달리 기아그룹의 위기는 외국 금융기관들에 상징적인 충격을 안겼다』면서도 『채권은행단이 기아만 유난히 차갑게 대하고 있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기아그룹이 일부 여론의 지원을 받자 정부는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깊어지는 신용위기에 계속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보면 정말 나라경제를 걱정하고 있는지 의심된다』고 꼬집었다. 〈윤희상·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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