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 기회냐 위기냐… 『경쟁력 높이기』시행업체 늘어

  • 입력 1997년 7월 21일 07시 55분


동양나이론에서 이름을 바꾼 효성T&C K과장은 회사가 작년부터 연봉제를 시작하자 직업관이 바뀌더라고 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일단 들어온 직장에서 평생 한솥밥을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능력과 실적이 곧바로 월급봉투로 계산되니 「다른 직장에서는 내 몸값을 얼마나 쳐 줄까」 「이 정도 일했으니 내년엔 얼마 정도 더 받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 일과 상관없이 눈치나 보면서 자리에 무조건 오래 앉아있는 사원이나 미니스커트 입고 다닌다고 여직원을 욕하는 사람들도 없어졌다. 일만 잘 하면 됐지 어떻게 하고 다니든 상관할 바 아니라는 것이다. 동창회 향우회 등 학연 지연에 얽혀있던 회사내 사적 모임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도 재미있는 변화 중 하나. 국내 대기업 중 드물게 대학졸업 이상 전 사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 회사는 2개월마다 한번씩 상사와 1대1 면담을 통해 성과목표치를 정하고 실적을 평가해 연말 연봉 책정 때 반영한다. 연봉제를 실시하는 국내 대부분의 기업들이 연봉을 올리기는 하되 내리지는 않는 「한국식」이지만 효성T&C는 내년부터 최하 등급의 경우 전년치의 20%를 깎는 파격적인 방식을 추가할 계획이다. 이 경우 같은 직급 입사 동기간에 최고 1천만원 이상의 연봉차가 날 수도 있다. 『직원들의 반발이 의외로 적다. 연봉제 실시 전 설문조사에서 무려 80% 이상의 직원들이 찬성한다고 했다』 일 좀 잘 한다 싶으면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돼 빠져나가는 직원들이 적지않아 고민이었지만 작년엔 이탈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직원들의 달라진 의식을 반영한 것 아니냐고 K과장은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종업원 1백인 이상 기업체 2백곳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연봉제를 도입한 회사는 지난 94년 4.2%에서 작년엔 7.8%로 늘었다. 올들어 LG칼텍스정유 해태전자 대우증권 동원증권 등도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1백대 기업 가운데 앞으로 2∼3년내 연봉제 도입을 생각하고 있는 회사가 60%를 넘는다. 고비용 저효율 구조 속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능력위주의 임금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경영자측 입장과 일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똑같이 돈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신세대 사원들의 생각이 맞아떨어져 연봉제 도입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는 풀이다. 그러나 연봉제가 긍정적인 변화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나만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받으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만연해 팀플레이가 잘 안된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작년부터 전사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원그룹의 한 사원은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동료간의 벽이 더 높아졌다. 팀간 부서간 정보교환과 업무협조는 물론이고 사소한 대화조차 잘 안돼 살벌하다. 야근만 하더라도 인사고과자인 상사 눈에 안 띄면 안하겠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패배주의가 만연하고 불만계층이 형성된다는 것도 부작용 중 하나. 지난 93년 국내 최초로 연봉제를 도입한 두산그룹의 한 임원은 『매년 직원의 15∼20%가 불만을 토로한다. 열심히 했는데 왜 이것밖에 안주느냐는 얘기다. 더 열심히 해서 많이 받겠다는 게 아니라 될대로 되라, 받은 만큼만 하겠다는 냉소와 패배주의가 생겨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연봉제는 또 감량시대에 정리해고를 위한 수단이라는 반발도 있다. 이 때문에 증권회사 노조들은 지난 2일 증권거래소 앞에서 연봉제 저지대회를 열기도 했다. 두산그룹 인력개발팀 金明右(김명우)과장은 『연봉제는 직원들의 호응이 절대적 조건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직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조언했다. 〈허문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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