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금융개혁 연기론」배경]정치논리 앞세운 사실상 포기

  • 입력 1997년 5월 14일 08시 52분


신한국당이 금융개혁 연기론을 주장한 가운데 주무부처인 재정경제원이 별다른 반대를 하지않아 금융개혁은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은행 독립, 은행소유구조 개편 같은 핵심과제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신한국당이 설익은 밥에 재를 뿌리고 재경원이 동조한 격이다. 사실 중앙은행 독립문제만 해도 재경원과 한국은행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고 은행소유구조 문제는 금융개혁위원회 내부에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상태다. 재경원 관계자들은 금융개혁 관련법안을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할 경우 9월 정기국회에 상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왔다. 대통령선거 정국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금융개혁 방안을 선뜻 내놓기는 어렵다는 것. 그런 가운데 신한국당이 연기론을 꺼내자 재경원측은 『단기과제 중 법개정이 필요없는 사안들은 그대로 시행하면 되지만 법개정이 필요한 사안들은 여당의 협력 없이는 연내 확정이 어렵다』며 신한국당의 주장대로 관련법안의 연내 처리를 철회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姜慶植(강경식)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은 지난 3월 취임후 『금융의 빅뱅(대대적 개편)이 시급하며 뒤로 늦추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다』고까지 말했지만 두달만에 여당의 정치 논리 및 개혁에 소극적인 재경원 관료들과 타협하는 모습이다. 금개위가 재경원을 견제하며 한국은행 독립론을 들고나온 것도 재경원의 본색을 드러내게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지난 1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금융개혁」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삼았다. 이에 따라 재경원을 배제한 채 민간경제인들로 구성된 대통령직속의 금개위가 출범, 많은 기대를 모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금개위는 금융산업에 대한 보호와 규제를 전면적으로 허문다는 목표아래 많은 과제들을 제시해왔다. 금융기관 내부경영 효율화, 지배구조 개선, 업무영역 벽허물기 등 주요 현안을 망라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이 경제혼란 우려를 이유로 금융개혁 연기를 거론함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간단치 않은 금융개혁은 다시한번 「실패의 기록」을 남길 가능성이 높아졌다. 신한국당은 이해관계가 복잡한 금융개혁의 강행은 선거에 유리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경제논리에 충실한 경제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다시 확인됐다. 〈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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