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경영 『시련의 계절』…삼익악기-한보 잇달아 좌초

  • 입력 1997년 5월 12일 07시 51분


유원 우성 삼미 삼익악기 진로그룹. 최근 부도가 나거나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는 이들 기업은 한결같이 경영권 승계를 마치고 2세가 경영해 온 회사들이다. 지금 나라안을 뒤흔들고 있는 한보도 1세 총회장과 2세 회장 과도체제였다. 2세 기업들의 고전이 잇따르자 금융기관들은 급기야 2세 기업에는 여신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등 돈줄까지 죄고 있다. 1∼2년전만해도 이들 기업의 경영권 승계는 변화와 도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중견 2세 그룹들의 좌절이 잇따르자 몇가지 공통적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다. 우선 무리한 사업확장이다. 작년 3월 좌초한 유원건설의 崔泳俊(최영준·36)사장이나 작년 10월 부도가 난 삼익악기의 李碩宰(이석재·38)사장, 지난 3월 쓰러진 삼미그룹의 金顯培(김현배·38)회장 등은 사업확장과 과감한 투자를 주도하다 경영권을 물려받은지 얼마 안돼 고배를 마셨다. 진로 張震浩(장진호·45)회장도 지난 88년 제2창업을 선언하면서 맥주공장에 8천여억원을 투자하는 등 문어발식으로 새 사업을 벌이다가 경기불황이 겹치면서 경영위기를 맞았다. 이들은 대부분 호황때 부친으로부터 기업을 대물림 받았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 경영을 쉽게 생각하고 의욕이 앞서 수성보다는 팽창에 몰입, 이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리스크(위험)에 쉽게 노출됐다는 지적들이다. 『2세들은 대부분 해외유학을 통해 경영학을 전공, 머리는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잠재력을 갖췄지만 페이퍼(보고서) 위주의 온실속 경영수업을 받은 탓에 공장을 슬쩍 훔쳐보기만 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냄새를 맡는 창업주에 비해 현장에 취약하다』(한 은행 임원) 또 경영권을 넘겨받자마자 재산싸움에 휘말려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거나 창업주와 운명을 같이해 온 원로들을 대거 몰아내 기업의 위기관리능력을 약화시킨 사례도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유원이나 삼익악기는 이복 동생과의 재산상속 싸움으로 기업이미지에 결정타를 입었다. 한편 최근에 등장한 2세들은 창업주 세대와 달리 정재계를 넘나들며 자기들끼리만 사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교환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경륜 대신 무모성이 앞서는 동년배 인맥을 급조하거나 위험한 정경유착의 수렁에 쉽게 빠지는 사례가 많았던 것으로 읽혀진다. 자금활용에 있어서도 자체 자금보다 로비성 대출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 금융부담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악순환을 자초했다. 한보의 鄭譜根(정보근·34)회장만해도 그렇다. 그러나 성공적인 2세 기업인도 적지않다. 재계에서는 동양그룹의 玄在賢(현재현·48)회장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그는 창업주의 사위라는 점에서 직계는 아니지만 지난 89년 동양시멘트 사장으로 있다가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시멘트와 제과를 두 기둥으로 한 동양그룹을 금융그룹으로 성공적으로 변신시켰다는 평이다. 지난 77년 검사직을 사임하고 기업경영에 뛰어든 그는 금융업을 기업변신의 축으로 설정, 일국증권 대우투자금융 동양생명보험 등 10여개 금융회사를 인수 또는 설립해 지난해 동양그룹 매출(2조5천억원)의 절반이 넘는 1조3천억원을 금융업에서 올렸다. 동양그룹 관계자는 『84년 증권업 인수가 88, 89년 증시호황으로 성장의 발판이 됐고 종합금융사 인수 역시 제2금융권 확장에 발맞춘 성공적인 전략이었다』고 전했다. 현회장의 성공에는 이같은 경영감각뿐 아니라 타 계열사를 인수하더라도 해당사 전문경영인을 활용하고 제조업에는 원로들을 중용하는 한편 금융업 등 신업종에는 40대 젊은 사장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용인술」이 적중했다는 평이다. 현대전자 鄭夢憲(정몽헌·49)회장 역시 비교적 성공한 2세경영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83년 설립된 현대전자를 84년부터 이끌어오면서 창업이래 매년 30%씩 매출을 신장시켜 세계5위권의 메모리반도체회사로 일궈냈다. 그는 지난 2월 현대종합상사 주주총회에서 이 회사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돼 현대엔지니어링 현대상선 등 7개계열사 회장직을 보유하고 있다. 미래산업을 내다보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 한국경제연구원 孔柄淏(공병호) 자유기업센터소장은 『바야흐로 창업주세대에서 2,3세 시대로 넘어가는 요즘 우리 기업들이 가족기업의 틀을 안고가면서 어떻게 경쟁력과 경영효율성을 높일 것인지가 과제』라고 지적했다. 〈허문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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