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후유증/풀어야할 숙제들]「과장 전결」 산업정책

  • 입력 1997년 2월 21일 19시 56분


[허승호 기자] 『코렉스와 관련한 기술도입신고서 수리는 과장전결이다. 당시 보고받지 못했다』 한보부도 이후 코렉스공법이 문제가 되자 95년2월 코렉스의 기술도입신고 당시 주무장관이었던 朴在潤(박재윤)전 통상산업부장관이 한 말이다. 5조원이 들어가야 할 투자와 관련, 정책검토를 한 장관의 발언치고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어서 「과장전결」이라는 유행어가 생겼다. 5조원의 투자가 있었지만 정책당국은 △공법은 타당한지 △공장건설계획은 제대로 짜였는지 △인프라 지원은 차질이 없는지 △은행돈은 제대로 투자됐는지 등을 눈여겨 살펴본 정부당국자는 찾기 어렵다. 사실 『규제완화와 민간자율화 시대에 정부가 개별기업의 투자에 하나하나 간여할 수 없다』는 주장에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통상산업부는 한보사건 이전 「과장전결의 투자」에 대해 뚜렷한 원칙을 제시한 바 있다. 현대그룹이 제철산업에 진출하려할 때 『비록 정부에 인허가권이 없다 해도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투자는 민관이 협의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는 이를 막았다. 통산부는 현대가 신고서를 내지도 않은 상태에서 산업발전심의회를 소집했고 장관이 직접 나서 「불가(不可)」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5조원이상이 투입된 당진제철소 건설은 「국민경제에 별 영향이 없는 소규모 투자」인지에 대해서 통산부는 설명이 없다. 정부가 이중잣대를 들고 진입을 막고싶을 때는 「민관협의」론(論)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선 「과장전결」론을 들고 나온다. 특히 통산부는 한보가 코렉스기술을 도입한 직후인 95년5월 포철에 『고로를 증설해달라』고 요청했다. 포철은 94년 「코렉스로를 추가건설하겠다」는 계획서를 정부에 제출해둔 상태였으나 이 요청에 따라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현대의 고로방식 진출을 막기 위한 포석이었다. 갈피를 잡기 힘든 산업정책이다. 한보의 한 임원은 『코렉스 공법은 94년에 통산부의 적극 권유에 의해 채택됐다』고 털어놓았다. 재정경제원과 은행감독원의 동일인 여신한도제도의 허점도 지적돼야 한다. 은행의 은행계정에 대해서는 특정기업에 여신이 지나치게 편중되는 것을 막으면서 신탁계정에는 아무런 견제장치도 두지않아 제일은행은 신탁대출 방식으로 한보에 자기자본의 1.5배에 달하는 돈을 몰아주었고 결국 오늘의 거대부실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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