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박스-사과상자」주의보』…한보 뇌물전달수단 애용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지난 93년8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라면상자와 사과상자가 거액의 뇌물을 전달하는데 주로 이용되고 있음이 이번 한보특혜대출 의혹사건 수사에서 다시 한번 드러났다. 6공때까지만 해도 뇌물을 줄 때 부피가 작은 고액의 수표가 가장 많이 사용됐지만 문민정부 출범이후에는 검찰의 자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뇌물을 주고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현금은 자금추적이 불가능한 이점이 있으나 부피가 커 불편이 따른다. 이 때문에 라면상자와 사과상자가 동원되고 있는 것. 한보그룹 鄭泰守(정태수)총회장도 4일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申光湜(신광식)제일은행장 등에게 3억∼4억원의 대출커미션을 전달하면서 현금을 라면상자와 사과상자에 담아 전달한 사실이 검찰수사 결과 드러났다. 가로 51㎝ 세로 36㎝ 높이 27㎝ 크기인 사과상자에 들어가는 돈은 신권으로 계산할 때 2억4천만원 정도. 신한국당 金錫元(김석원)의원이 지난 95년11월 全斗煥(전두환)전대통령으로부터 변칙 실명전환 부탁을 받고 미처 전달하지 못한 61억원은 검찰이 지난해 1월 쌍용양회 창고에서 발견할 당시 사과상자 25개에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그러나 뇌물액수가 사과상자 한개를 가득 채우는 2억여원이 아니라 1억여원일 경우는 어떻게 할까. 이 경우 사과상자를 사용하면 빈 공간이 많이 남게 돼 불편하기 때문에 라면상자를 주로 사용한다. 가로 51㎝ 세로 35㎝ 높이 14㎝ 크기인 라면상자에는 신권으로 1억2천여만원이 들어가지만 신권과 구권을 혼합하면 1억원 전달용으로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사과와는 달리 주위로부터 「웬 라면(?)」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어 사과상자보다는 인기가 적다. 사과상자에 2억4천만원을 1만원짜리로 가득 채웠을 경우 무게는 사과보다 무거운 26.4㎏. 라면상자에 1억원을 넣었을 때의 무게는 12㎏정도. 사과상자든 라면상자든 정총회장처럼 70대 노인이 직접 손으로 들어 운반하기는 힘들다. 검찰은 바로 이 점에 착안, 라면상자나 사과상자를 들어준 정총회장의 운전사와 비서를 불러 수사단서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꼭 사과상자나 라면상자가 아니라도 거액의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구속된 孫洪鈞(손홍균)전서울은행장처럼 아예 돈을 넣은 통장과 도장, 비밀번호를 넘겨받는 방법이 그것이다. <하종대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