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수사/박태준씨 일문일답]

  • 입력 1997년 2월 4일 08시 22분


[경주〓許承虎·尹永燦기자] 지난 2일 오후 일본에서 귀국한 朴泰俊(박태준)전 포항제철 회장은 경북 경주의 현대경주호텔에서 하루를 묵으며 3일 밤 취재진과 만나 한보철강 문제와 관련,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밝혔다. 박 전회장은 당진제철소의 입지문제, 코렉스공법 문제점, 경영 난맥상 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당진공장이 완공된다해도 경영이 정상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는 이미 작년에 포철의 金鍾振(김종진)사장에게 『내년중 한보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어차피 포철이 뒷수습을 해야 할 것인데 미리 잘 준비를 하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자신의 향후 거취와 관련, 『길게 생각하겠다』며 여운을 남긴 그는 高承德(고승덕·박전회장의 사위)변호사와의 관계에 대한 발언에서 『서로의 정치적 진로에 관련없이…』라는 전제를 달아 정치적인 복안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다음은 박 전회장과의 일문일답. ―한보철강에 대해 미리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꽤 오래전부터 걱정했다. 80년대말 당진에 공장을 짓는다고 할 때부터 그곳이 대단위 제철소 부지로 적정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작년부터는 지금 언론에 보도되는 당진제철소 관련 각종 통계수치들을 접할 수 있었다. 철(鐵)을 다룬 사람으로서 우리 철강정책이 우왕좌왕하는구나 걱정했다. 산업국가가 되려는 나라들은 모두 철을 가지려 애를 써왔다. 그러나 2차대전후 철강산업을 하려다가 국가경제에 위기를 초래한 나라도 없지 않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등이 그 예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포철이 고로로 2천여만t을 가지고 있고 몇몇 전기로가 1천2백만t을 생산, 현재 국내엔 3천2백만t의 설비가 있다. 고로는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값싼 철강을 공급할 수 있다. 반면 전기로는 다양한 품종에 소량을 생산한다. 즉 특수용도의 철강을 비싼 값에 만드는 것이다. 이같은 구색을 맞춰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러나 어떤 설비를 어떤 시스템으로 보유할 것인지에 대해 산업당국(통상산업부)이 적절히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한보철강이 도입한 코렉스 설비는 어떻게 보는지. 『용광로방식으로 하기엔 너무 용량이 클 경우 경비를 줄이기 위해 직접환원(DRI), 용융환원(코렉스) 등의 방식을 택한다. 코렉스는 소량생산을 위한 설비다. 국가적 수급을 맞출 대단위 설비가 아니다』 ―코렉스 공법엔 기술적인 난점이 있다는데…. 『90년 포철이 코렉스기술을 개발한 오스트리아의 배스트 알핀사와 공동기술개발계약을 했다. 분광(粉鑛)을 사용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개선하자는 것이었고 이 기술이 개발되면 포철도 도입하기로 했다. 내가 포철을 그만둔 뒤 포철이 60만t 코렉스공장을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분광처리기술이 개발됐구나」생각했다. 그러나 작년에 우연히 일본에서 배스트 알핀사 관계자를 만나 물어봤더니 매우 어색해 하면서 「아직 기술개발이 안됐다」고 대답하더라.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포철에 물었더니 팰릿(철광석을 가공한 중간재)을 원료로 쓴다고 했다. 그러면 원가가 높아진다. 포철은 2천만t씩 생산하는 기업인만큼 연구개발을 위해 원가가 더 들어가더라도 소형 코렉스 공장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처음 사업을 시작한 한보가 대단위로 도입한다고 하니 의아했다』 ―경영상의 문제는…. 『투자비 구조를 살펴보니 엄청나게 비싸게 먹혔더라. 비록 시차가 있지만 92년말 완공한 광양제철의 경우 t당 투자비가 7백50달러였다. 그런데 당진의 코렉스는 t당 1천2백달러라고 들었다. 싸게 만들려고 개발한 최신기술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면 채산이 맞겠는가. 그래서 작년 10월 포항에서 김종진포철사장을 만났을 때 「내년쯤 한보에 문제가 생기면 포철이 뒷수습을 할텐데 미리 대처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인허가당국에는문제가없었는가. 『철강은 전체설비에 대해 정부당국과 사업체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코렉스의 문제는 정부도 알고 있었을텐데…. 철강협회도 마찬가지다. 협회가 나서서 미리 대화하고 자율조정을 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보는 어떤 방향으로 경영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노 아이디어(대안이 없다). 어떤 말을 하려면 문제점을 계속 추적, 현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한다면 무책임한 발언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과거에 대한 것 뿐이다』 ―정부도 고민이 많을텐데…. 『나도 고민이 된다. 저 공장이 제대로 돌아갈지, 만일 돌아간다 해도 언제나 흑자를 낼지 의문이다. 그러나 자료도 없고 현장도 보지 않았다. 더이상 무책임한 대답을 요구하지 말라』 ―朴得杓(박득표) 전포철사장이 당진제철소 위탁경영을 맡게됐는데…. 『박사장이 골치가 아플거다. 박사장은 유능한 사람이다. 그러나 박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자금이 충분히 지원된다」는 조건아래 건설을 마무리짓는 수준일 것이다』 ―민간기업이 대단위 제철사업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미국의 카네기도 민간인이었다.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누구든 충분한 돈과 충분한 기술, 열의를 갖추면 할 수도 있다』 ―한보의 경우 뭐가 부족했다고 보나. 『전체적으로 모두 부족했다』 ―한보의 문제점을 요약하면…. 『크게 다섯가지다. 첫째, 입지선정이 잘못됐다. 둘째, 코렉스 열연 냉연 철근공장의 생산설비를 잘 결합하지 못했다. 셋째, 과대 과잉 낭비투자였다. 넷째, 당국의 기술정책이 없었다. 다섯째, 결과적으로 완공후에도 수익성이 불투명하다』 ―한보사태에 대해 일본 제철업계의 반응은…. 『표현이야 하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기분나쁠게 없겠지. 내가 포철에 있을 때 일본업계와 한국이 2백만t까지의 대일수출을 용인하기로 신사협정을 했다. 그러나 포철이 작년에 2백45만t을 수출, 일본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적 구상은 있는가. 『정치 얘기는 하지말자』 ―향후 인생계획은…. 『길게 생각하겠다』 ―고승덕변호사가 인천서구 보궐선거에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하려다 그만뒀다. 이유가 있는가. 『신한국당의 趙榮藏(조영장)후보는 내가 가장 어려울때 도와준 사람이다. 서로의 정치적 진로와 무관하게 나도 그를 돕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해 사위에게 출마포기를 권유했다』 ―대선전 정치를 재개할 것인가. (무응답) ―내일 포항 명예시민증을 얻는다는데…. 『매우 명예스러운 일이다』 박전회장은 경주에 오는 길에 구미의 고朴正熙(박정희)전대통령 생가에 잠깐 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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