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제]격차 커진다…南 무역규모 北의 130배

  • 입력 1996년 12월 1일 20시 01분


「許文明기자」 남한과 북한이 해방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지 올해로 51년째다. 통계청이 1일 발간한 「남북한 경제사회상 변화」 통계자료는 분단이후 남북한의 변화된 모습이 여러 잣대로 비춰져 있다. 각각 다른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결과 남한은 농사를 짓는 농업인구와 농업가구수가 계속 줄어든 반면 북한은 광복이후 두배가량 늘었다. 공업분야에서는 분단이후 남쪽의 급속한 성장으로 국민총생산은 20배(95년기준 남한 4천5백17억달러, 북한 2백23억달러), 1인당 GNP는 10배(남한1만76달러, 북한9백57달러), 무역규모는 1백30배(남한 2천6백1억달러, 북한 20억달러)가량이나 차이나고 대부분 산업에서 남한의 생산능력이 북한의 수십배에 달한다. 이 자료는 통계청이 한국은행 통일원 국가안전기획부 등 관련부서에서 수집한 북한 자료를 토대로 각종 사회통계를 추정한 것으로 남북한 관련 총지표가 망라돼 있다. ▼세대간 이질감 심화:1946년이후 출생자인 분단이후 세대 인구수는 96년현재 남한이 총인구대비 83%, 북한이 86.5%이며 남북전체로는 83.9%다. 남북한 인구 10명중 2명만이 일제시대를 체험한 세대라는 얘기다. 또 54년이후 출생자인 전후세대 인구수를 보면 남한이 총인구대비 73.6%, 북한이 79.1%로 남북전체로는 75.5%를 차지해 남북인구 10명중 2.5명만이 6.25전쟁을 경험한 세대다. 65년에는 전후세대가 남북한 전체인구의 36.6%에 불과했다. ▼북한도 남초(男超):여자 1백명에 대한 남자인구수인 성비(性比)를 보면 남한은 해방이후 계속 남초가 지속된 반면 북한은 49년 성비가 98.8명, 91년엔 99.9명으로 해방이후 여자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95년에 100.2, 96년엔 100.3명으로 남초현상으로 돌아섰다. 해방직후 주로 가족을 남겨두고 월남한 남자들이 많아 여초현상을 이루다 전통적인 남아선호사상 영향으로 갈수록 남자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분석. ▼남북교류:89년 6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에 따라 인적교류가 시작된 이후 남북한을 오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96년6월까지 7년동안 북한을 방문한 남한사람들은 모두 1천3백21명으로 작년 한햇동안 방북자가 5백36명으로 제일 많았다. 이에 비해 공식적으로 남한을 찾은 북한사람은 5백75명이며 모두 86∼93년에 다녀가 94년이후에는 한 사람도 없다. 중국 등 제삼국에서 만난 남북한 사람들은 5천6백74명. 이중 학술분야가 1천3백93명으로 가장 많고 경제 1천3백59명, 종교분야 4백78명, 이산가족 상봉은 9백여명. ▼홍수피해:작년 8월은 남북한 모두 홍수피해가 심했다. 특히 북한에는 잔인한 여름이었다. 8월 한달간 북한의 강우량은 3백47.0㎜로 연평균 1백94.7㎜에 비해 무려 78.2%가 많았다. 지역별 강우량은 평양이 4백73.7㎜로 예년의 2.7배, 신의주는 2.2배, 해주 1.8배, 원산 2.2배, 강계는 2.0배였다. 남한도 작년 8월 3백48.6㎜가 내려 평년보다 42.6%가 많았다. 북한은 작년 이같은 대홍수로 식량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16.7%가 줄어 식량난의 심각성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게 했다. ▼기타:96년현재 남북한 총인구는 6천8백80만6천명으로 남한이 4천5백24만8천명, 북한이 2천3백55만8천명으로 남한인구가 북한보다 1.9배 많다. 95년기준 남한의 평균수명은 72.9세로 북한 70.3세보다 2.6세가량 높다. 평균 가족수는 남한이 3.3명, 북한이 4.4명으로 남한이 1.1명 적다. 인구1만명당 대학생수는 92년기준 남한이 2백70명, 북한이 절반수준인 1백40명이다. 96년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일간지는 16개(괄호안 남한 66개), TV방송국은 3개(9개), 라디오 방송국은 14개(71개), 통신사 1개(2개)다. 연간 공휴일수는 남북한 모두 17일로 같지만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생일 이틀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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