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전쟁,첩보전 방불…업계 『정보유출 막아라』 비상

  • 입력 1996년 11월 10일 20시 23분


「許承虎·李英伊기자」 「KPQ―1 수송작전」. 지난달 말부터 이달 2일까지 삼성자동차가 벌였던 1급 비밀 수송 작전명이다. 삼성자동차의 기술제휴처인 일본 닛산에서 시험생산된 차량 2대중 1대를 국내에 들여와 李健熙삼성그룹회장에게 보고한 후 다시 내보내되 최고위직 몇명 외에는 누구도 자동차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작전의 핵심이었다. 李회장의 삼성자동차 부산 신호공장 방문날짜가 지난 2일로 잡히자 시험제작차량은 현해탄을 건너 1일 부산공장에 도착했다. 위장포 나무상자 컨테이너에 겹겹이 싸인 상태였다. 그런데 李회장이 도착하기 하루전날인 1일 저녁 자동차담당 기자들이 삼성자동차를 방문했다. 삼성측은 부랴부랴 자동차를 밀실로 숨겼다가 기자들이 돌아간 후 다시 꺼냈다. 李회장이 공장을 떠난 직후 자동차는 다시 겹겹이 포장돼 일본으로 되돌아갔다. 이 차가 한국땅에서 위장막을 벗은 것은 불과 한 시간 남짓했고 차량의 형태를 본 사람은 모두 합쳐도 손가락으로 꼽을 숫자.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현대당산아파트 뒤에는 학교처럼 보이는 허름한 건물이 몇 동(棟)있다. 꽤 큰 부지에 들어선 건물이지만 입구에는 간판이 없다. 그러나 군(軍)의 특수부대를 연상시킬 만큼 경비는 삼엄하다. 대우자동차의 자(子)회사로 승용차 디자인을 담당하는 「대우자동차포럼」의 사옥이다. 이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의 직급은 「이사」다. 별도 회사로 분리할 규모는 안되지만 보안을 위해 모기업과 억지로 떼어놓다보니 평이사를 대표이사로 등록한 것. 물론 외부인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며 꼭 방문필요가 있는 사람은 대표이사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모기업인 대우자동차의 임원중에서도 이곳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다. 심지어 이 회사의 직원들도 자기 사무실 외에 다른 사무실에 들어가려면 사전허락을 받아야 한다. 대신 金泰球대우자동차회장은 틈만 나면 이곳을 들른다. 디자인이 자동차 시장점유율을 결정짓는 「승부처」임을 잘 알기때문에 나타내는 관심이다. 한국에서 자동차는 기술적 측면에서 「성숙상품」으로 분류된다. 기술력이나 품질에서의 우열은 거의 가릴 수 없고 디자인과 이미지로 시장에서 승부하는 것이다. 각 자동차제조업체들은 디자인이야말로 시장지배력을 결정하는 승부처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새 차를 개발, 주행시험을 할 땐 차량의 앞 뒷부분을 위장포로 덮어버린다. 주행시험장 자체가 1급보안구역이지만 혹시 산업스파이나 기자들이 망원렌즈 등을 동원, 차체 모습을 찍어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전문잡지의 경우 이렇게 몰래 찍어온 사진을 토대로 컴퓨터를 동원, 덮씌워진 위장포를 벗겨낸 모습을 추정해 공개하곤 한다. 이럴 땐 자동차회사 전체가 발칵 뒤집힌다. 제품의 생명을 디자인에 걸다시피 하는 것은 자동차뿐 아니다. 가전제품 운동용품 등도 다 비슷하다. 특히 기술적으로 거의 완성단계에 있어 메이커별 품질격차가 크지 않은 품목일수록 디자인의 중요성은 커진다. 디자인의 비중이 커지면서 관련된 업체간 다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낫소는 현재 한일신소재와 대법원에서 축구공 디자인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낫소가 개발한 다이아몬드 무늬의 축구공을 한일에서 베꼈다는 주장. 이 디자인은 86년 아시아경기와 88년 올림픽, 현재 프로축구의 공인구로 쓰이고 있다. 한일측은 『낫소의 의장등록 보호기간 10년이 지난 92년부터 디자인을 사용한 것이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1,2심에서 우리가 승소한 것으로도 명백하다』는 입장. 대법원에서 낫소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낫소는 헌법재판소까지 가보겠다는 입장이다. 식품이나 화장품업계에서는 내용물을 담는 병이나 통이 디자인경쟁의 대상이다. 태평양화장품은 경쟁사인 P사가 디자인실 직원을 스카우트한 뒤 비슷한 디자인의 화장품케이스를 만들어내자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다. 최근에는 퇴사 후 독립한 직원이 화장품회사를 창업,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하는 바람에 마찰을 빚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