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시장 1조… 대학에 창작연구소, 작법서도 쏟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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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커지며 창작 이론 체계화
‘창작론 연구’등 학술연구도 활발
웹소설 질적 성장에 도움될 듯

“거실 한쪽엔 거대한 유리창이 있었다. 창 너머로는 아름다운 정원과 수영장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집주인에게 정원은 그의 ‘낙원’이었다….”


지난달 9일 출간된 웹소설 작법서 ‘챗GPT와 웹소설 쓰기’(멀리깊이)가 제안한 방법을 활용해 기자가 인공지능(AI) 챗봇 ‘챗GPT’로 얻은 결과물의 일부다. ‘자산 1조 원대를 보유한, 자수성가해서 성격이 고집스럽고 자기 확신이 강한 50대 남자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집의 거실 풍경을 묘사하라’고 입력하니 나온 결과다.

신간은 “‘부잣집 거실’처럼 뭉뚱그리지 않고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하고, ‘묘사하라’처럼 하나의 요청만 해야 한다” 등 챗GPT를 웹소설 창작에 활용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결과물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기자는 74자의 요구사항을 입력해 단숨에 664자의 준수한 결과물을 얻었다. 매일 5000자 이상, 한 달에 15만 자 넘게 쓰는 웹소설 작가에겐 챗GPT가 ‘보조 작가’로서 쓸모 있는 셈이다.

신간을 쓴 웹소설 작가 이청분 씨는 “챗GPT는 독자가 좋아하는 ‘클리셰’를 만드는 데 활용하기 좋다”며 “글을 쓰다 막혔을 때 다양한 아이디어를 찾는 웹소설 작가 지망생이 적지 않아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최근 웹소설 창작 이론 시장이 체계화되고 있다. 웹소설 시장 규모가 2013년 100억 원, 2020년 6400억 원에 이어 지난해 1조390억 원으로 껑충 뛴 것이 그 배경이다.


광주대 문예창작학과는 13일 ‘웹소설 창작연구소’를 개설했다. 내년 1학기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웹소설 대학원 전공과 연계해 웹소설 창작과 이론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올 6월 나온 ‘독자와 출판사를 유혹하는 웹소설 시놉시스와 1화 작성법’(머니프리랜서) 같은 기초 작법서도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학술 연구도 활발해지고 있다. 김명석 성신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올 1월 문학 저널 ‘우리문학연구’에 논문 ‘웹소설 창작론 연구’를 발표했다. 4일 출간된 ‘웹소설 보는 법’(유유)은 꽤 심도 있는 비평서다. 현실에 좌절하다 보니 옛날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청년세대의 마음이 ‘환생물’의 유행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담겼다.

이 같은 연구는 웹소설이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웹소설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환생’,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등 비슷한 패턴을 지닌 작품이 양산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표절 논란도 잇따르고 있다. 올 7월엔 한 웹소설이 유이세스 작가의 ‘에피소드’를 표절한 사실이 드러나 삭제됐다.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단순히 조회 수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의미 있는 웹소설을 찾을 필요가 있다”며 “순수문학 비평이 한국 근현대소설의 질적 성장을 이끌었던 것처럼 웹소설 이론이 정립돼야 웹소설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창작연구소#작법서#웹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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