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고통이 극에 달하는 밤, 詩가 돋아나는 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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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의 말/김혜순 지음, 황인찬 인터뷰/288쪽·1만8000원·마음산책

“저는 지금도 자다가 눈을 뜨면, 엄마가 계시던 병동의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김혜순 시인(68)은 지난해 4월 14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문학과지성사)를 펴낸 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2019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시집을 썼고, 아직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엄마가 앓고 있을 때, 엄마가 돌아가실 무렵, 그 후 엄마의 집을 정리하던 시간에 시를 적었다”며 “죽음이란 우리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국제부문, 2021년 스웨덴 시카다상을 받은 김 시인의 인터뷰집이다. 황인찬 시인(35)이 김 시인을 6개월 동안 인터뷰해 정리했다. 젊은 시인과 오래 시를 써온 시인의 대화라는 점에서 시에 대한 스승과 제자의 문답 같다.

김 시인은 학창 시절부터 ‘문학소녀’였다. 할머니가 불을 끄고 자라고 해도 이불 속에서 플래시를 켜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 밤을 새우고, 다음 날 학교에 지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는 “가득 쌓인 책들을 볼 때마다 ‘저 책들은 내 것이야’라고 생각했다”고 추억했다.

1970년대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던 김 시인은 책의 번역자 주소를 알려달라는 형사의 요구를 거절한 뒤 뺨을 7대 맞았다. 자신이 느낀 슬픔을 ‘두 뺨에 두 눈에 두 허벅지에/마구 떨어지는 말 발길처럼’(시 ‘그곳1’ 중)이란 시구로 적으며 버텼다. 2015년부터 앓고 있으나 병명조차 모르는 신체적 고통에 대해 ‘영혼이 잡아당겨지는 느낌/아플 때 영혼은 어디 숨어 있을까’(시 ‘리듬의 얼굴’ 중)라고 쓰며 자신을 다독였다.

“저는 제 고통이 극에 달한 밤, 제 몸에 돋는 거대한 날개를 목도합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여자의 어깨에 투명한 날개가 돋았다고 씁니다. 오직 즉각적인 상상력에 의해서만 우리의 고통을 쓸 수 있을 뿐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혜순의 말#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즉각적인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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