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김치, 부엌칼, 마고 할미와 조각보…제이디 차가 예술로 살아남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7일 11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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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귀향’ 앞에 선 작가 제이디 차. 사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록달록한 무늬 속 신비로운 풍경 앞 한 여자가 서 있다. 부엌칼과 배추 김치가 그려진 외투와 소라를 갑옷과 투구처럼 쓴 여자는 관객을 정면으로 쳐다본다. 한국계로 캐나다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제이디 차(40·한국명 차유미)의 자화상의 모습이다. ‘귀향’이라는 제목의 작품에서 그녀는 “작가로서 한국에 돌아온 만큼 자신있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차 씨는 서울 용산구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는 그룹전 ‘지금 우리의 신화’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그는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마고 할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글로벌 미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우저앤워스 뉴욕 갤러리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현재 영국 런던의 공공미술관인 화이트채플에서도 한옥을 모티프로 한 설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제이디 차: 가택 신, 동물 수호자와 용서를 위한 5개의 길, 화이트채플갤러리, 런던, 2022년 9월 20일~2023년 4월 30일. 사진: 앤디 키트(Andy Keate), 화이트채플갤러리 제공

전시장에서 만난 차 씨는 그림 속 강렬한 모습과 달리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품에 영감이 된 마고 할미 신화와 바리 공주 설화가 언급되자 이내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신화 속 마고 할미는 오줌과 대변으로 강과 산을 만들었다”며 “우리 사회에서 종종 무시 당하는 존재인 할머니를 파워풀한 존재로 그려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마고 할미는 한국 민속 신앙에서 창조신으로, 지역에는 여전히 마고 관련 전설이나 장소가 남아 있다. 다만 민속 신앙이 소홀한 대접을 받으면서 관련 연구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차 씨는 이렇게 주류에서 밀려났지만, 가치있는 것들을 모아 자신만의 시각 언어로 재해석해 작품으로 제시한다.

제이디 차: 가택 신, 동물 수호자와 용서를 위한 5개의 길, 화이트채플갤러리, 런던, 2022년 9월 20일~2023년 4월 30일. 사진: 앤디 키트(Andy Keate), 화이트채플갤러리 제공

런던과 서울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조각보’ 또한 이런 맥락이다. 그는 “주류 미술사에 익숙한 사람은 이모양을 보고 몬드리안을 떠올리지만, 내가 영감을 받은 것은 한국의 이름모를 여인들“이라고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엄마가 딸에게, 그 딸이 또 딸에게 말과 손으로 전해준 예술로서 ‘조각보‘의 가치를 끌어온 것이다.

제이디 차. 사진제공: 타데우스로팍

이러한 작품 스타일은 결국 그녀의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차 씨는 자화상 왼편에 있는 갈매기를 가리키며, “캐나다에서 갈매기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높은 하늘을 유영하는 갈매기는 리처드 버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갈매기는 캐나다와 한국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했던 자신을 상징하는 듯 했다. 차 씨는 “내 작품을 서양인은 동양적이라고, 한국인은 서양적이라고 느껴 흥미롭다”고 했다.

너무 다른 두 문화 가운데서 차 씨는 기존의 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조각보, 갈매기, 마고할미 등 틀에서 밀려난 것들을 모아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다. 그녀의 예술적 생존법은 독특한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갑옷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었음을 작품은 보여준다. 전시는 2월 25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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