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폭스뉴스’는 어떻게 노동계급 속으로 파고들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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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포퓰리즘/리스 펙 지음·윤지원 옮김/476쪽·2만2000원·회화나무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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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미디어는 막대한 힘을 잃어버렸지요. 폭스뉴스는 계속해서 잘나가고 있고요.”

2010년 이 말을 할 때, 폭스뉴스 진행자 빌 오라일리(73)는 떵떵거릴 만했다. 당시 그들의 시청률은 경쟁사 CNN과 MSNBC를 합친 것보다 높았다고 한다. 물론 시청률이 프로그램의 질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만 어차피 폭스뉴스는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실은 관심도 없었고.

폭스뉴스는 다양한 매체가 그득한 미 방송계에서도 무척 특이한 존재다. ‘미디어 황제’ 루버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91)이 만든 극우 성향의 TV라는 건 웬만큼 알려진 사실. 초기엔 대다수 언론의 비웃음을 샀던 폭스뉴스가 어떻게 이런 역전 만루홈런을 칠 수 있었을까. 답은 뉴욕시립대 미디어문화학과 교수인 저자가 붙인 부제에 그대로 나와 있다. ‘보수를 노동계급의 브랜드로 연출하기.’

영국 타블로이드 ‘스타’ 등에서 황색저널리즘을 갈고닦은 머독은 일단 화제몰이에 집중했다. 자극적인 사건, 더 자극적인 성적 메시지…. 지금이야 걸작으로 인정받지만 사고뭉치 가장과 아들이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 폭스뉴스에서 나온 건 우연이 아니었다. 당시 미 TV에서 모범적이지 않은 가족을 묘사하는 건 금기에 가까웠다.

노이즈 마케팅 전략의 또 다른 공격 대상은 주류 언론들. 공정과 양심을 내세우는 뉴욕타임스(NYT) 등을 진보의 탈을 쓴 엘리트 기득권자로 묘사했다. 그들은 ‘서민을 위한 방송’을 한다며 대놓고 이죽거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갖고 있고, 대부분의 미디어는 그를 지지합니다. 서민들에겐 서민들이 있을 뿐입니다. 누가 이기나 두고 봅시다.”(2009년 방송에서)

저자가 볼 때 폭스뉴스의 성공은 이런 일련의 ‘정교한 프레이밍’ 전략 덕분이었다. “뉴스 방송이란 공익사업 이미지가 아닌, (이데올로기적) 정체성에 바탕을 둔 텔레비전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기존 보수의 구도에서 기업가와 노동자는 가까워지기 힘든 관계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기업가들을 ‘일자리 창출자’라고 부른다. 친부유층 공화당이 노동자의 친구란 인식 전환을 꾀했다. 일부 진행자가 유난히 고졸인 걸 강조한 것도 ‘우리 친구 아이가’ 전술이었다. 미 뉴스에서 공식처럼 쓰던 ‘대중 여러분(general public)’ 대신 시청자를 ‘서민(folk)’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숱한 비난에도 꿋꿋하던 폭스뉴스의 위기는 의외의 틈바구니에서 터져 나왔다. 잘나가던 제작자와 진행자들이 성 스캔들에 휘말리며 스스로 무너졌다. 또한 더 ‘막가파’가 등장하며 질질 끌려다닌다. 바로 폭스뉴스가 처음엔 대선 후보 ‘깜’도 안 된다고 여겼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이 가득하다. 미 언론계의 이면을 여지없이 까발린다. 세계 곳곳에서 좌우 포퓰리즘이 득세하는 상황에 대입해 봐도 좋은 해설서가 되어 준다. 다만 원문 탓인지 번역 탓인지 모르겠으나, 10년 전 대학 전공서적 같은 문장들이 집중을 가로막는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로운데 한참 무슨 말인지 고민해야 했다. 폭스뉴스와 비교하며 식자층의 어리석음을 비판한 책이 ‘엘리트’스러운 글이란 건 좀 그렇지 않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극우성향#뉴스채널#자극적 내용#언론 기득권#친구 프레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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