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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금융이 살찌면 나라 경제는 왜 팍팍해질까

입력 2021-10-02 03:00업데이트 2021-10-03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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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흑역사/니컬러스 색슨 지음·김진원 옮김/560쪽·2만2000원·부키
‘부의 흑역사’ 영국 원서 표지에는 금융가가 노동자의 등을 밟고 올라서 이득을 취하는 풍자화가 그려져 있다. 저자는 “금융의 비대화는 우리의 경제와 삶을 망친다”고 지적한다. 부키 제공
최근 논란이 된 화천대유자산관리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설립됐다. 이 소규모 회사가 92만 m² 부지에 5903채의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할 수 있었던 건 금융 덕분이었다. 화천대유는 3년간 약 6300억 원의 자금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조달했다. 금융권 자금이 극소수 투자자들의 천문학적 수익 창출에 쓰인 셈이다.

영국 경제 저널리스트이자 조세 분석가인 저자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수익률이 높은 투자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자금을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입하는 사모펀드다.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개발사업도 투자 대상이다. 이 같은 투자를 통해 금융권은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부를 창출하는 본연의 사회적 역할은 등한히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첨단 자동차 산업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제조업이나 신사업 연구개발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인색하다는 것. 그 결과 자금을 융통하지 못한 산업군이 몰락해 사회성장은 둔화된다. 이른바 ‘금융의 저주’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예를 들어 2002년 영국 런던에 설립된 경찰훈련센터 건물을 세운 건 미국 대형은행과 영국 자산운용사 등 10여 개 금융사가 합작해 만든 민간 투자사다. 건물 건축비용은 약 1700만 파운드(약 270억 원). 만약 영국 정부가 25년 상환 조건으로 5% 이율의 채권을 발행해 건물을 지으면 3700만 파운드(약 589억 원)에 운영비 등을 더한 금액을 부담하면 된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임차비용과 민간 수익분 등을 포함해 25년간 민간 투자사에 총 1억1200만 파운드(약 1784억 원)를 지불하는 계약을 맺었다. 정부로선 적지 않은 손해를 떠안은 셈이다.

이 같은 국가 사회적 손실의 원인은 금융의 비대화다. 금융에 대한 법적규제 장치가 허술해지면서 금융권의 투기가 활성화됐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를 구분하기 위해 1933년 제정한 글래스스티걸법은 금융규제 완화 흐름과 더불어 1999년 폐지됐다. 무역 등 실질적 가치가 오가는 금융투자를 제외하고 국가 간 금융투기를 엄격히 제한한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도 세계화 흐름과 함께 무력화되고 있다. 그 결과 사회적 피해는 막심하다. 1990∼2023년 미국 금융권이 미국 경제에 야기한 피해액은 최대 22조7000억 달러(약 2경6899조5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자는 비대해진 금융부문을 이대로 두면 1995∼2015년 영국 경제에 끼치는 피해 비용이 4조5000억 파운드(약 7168조23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소개한다. 가구당 17만 파운드(약 2억70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국가경제에서 금융의 역할을 축소할 것을 제안한다. 각국이 금융권을 감시하는 기구를 설립하고 관련법을 만들어야 하며 금융사의 해외 조세도피를 근절하기 위한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금융의 비대화로 인한 경제위기를 다시 맞지 않으려면 자본 통제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금융의 저주를 푸는 열쇠는 결국 합리적 금융규제와 더불어 경제주체들의 끊임없는 감시, 민주적 통제가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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